누가 나와도 불안한 불펜진의 상황에서 악몽이 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만 36세 베테랑의 경험으로 악몽에서 깨어났고 구멍난 필승조를 채워줬다. 롯데 자이언츠 신정락(36)이 혼란의 상황을 수습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
롯데는 지난 1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6-5로 신승을 거뒀다. 빗속의 혈전 끝에 롯데는 시즌 첫 2연승을 달렸다.
경기 내내 위기였다. 선발 찰리 반즈는 4⅓이닝 6피안타 6볼넷 3탈삼진 4실점 난조를 보였다. 주중 첫 경기부터 외국인 선발 투수가 5이닝도 채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불펜진에 가뜩이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현재 롯데 불펜진 상황은 좋지 않다. 셋업맨 구승민, 마무리 김원중을 제외하면 확실한 믿을맨이 없다. 이민석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게 되면서 시즌 아웃됐고 필승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던 최준용도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면서 2군에 머물고 있다. 김진욱 최이준 정성종 등 좌우 영건들도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그나마 김도규와 신인 이태연이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기복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1군에 머물고 있는 베테랑인 김상수 신정락에게 기대야 하지만 이들 역시 세월의 무게와 마주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베테랑들에게는 다른 젊은 선수들에게 없는 경험이라는 또 다른 무기가 있다. 롯데는 이 경험은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상수와 신정락 등 지난해 방출 통보를 받았던 투수들을 불러 모은 것도 젊은 투수들의 보호막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바랐기 때문. 이들 덕분에 1승을 더 거둘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금상첨화의 날이 바로 11일 경기였다. 반즈의 조기 강판은 투수진 운영을 꼬여버리게 했다. 구승민과 김원중을 남겨두고 5회부터 7회까지 막아줘야 할 투수들이 필요했다. 2-3으로 뒤진 5회 1사 1루에서 김도규가 반즈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제구와 구위가 모두 안정적이지 않았다. 결국 수비 실책으로 1점을 더 허용해 2-4로 격차가 벌어졌다.
6회에는 신예 이태연이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이태연은 LG 중심 타선인 문성주와 김현수를 이겨내지 못하고 1사 2,3루 위기를 자초했다. 아웃카운트를 잡아줄 투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 상황에서 신정락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잠수함 신정락은 외국인 타자 오스틴 딘을 상대할 스페셜리스트로 등장했고 임무를 완수했다. 1루수 파울플라이를 유도해내면서 2사 2,3루를 만들었다.
이후 좌타자 문보경은 자동 고의4구로 보내면서 2사 만루 상황에서 김민성을 상대했다. 또 다시 만난 우타자는 신정락에게 큰 고비가 아니었다. 결국 김민성까지 2루수 뜬공으로 요리하면서 2-4에서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는 위기를 차단했다. 승부처였다.
신정락이 막은 위기는 롯데에 기회로 되돌아 왔다. 6회말 노진혁의 2타점 2루타와 상대 실책을 곁들여서 대거 4점을 뽑아내면서 6-4로 역전했고 신정락의 승리 투수 요건이 완성됐다.
예상보다는 더 많은 이닝을 던져야 했던 구승민과 김원중이었지만 두 선수는 3이닝을 1점으로 틀어막으면서 팀의 승리, 신정락의 승리를 지켰다. 신정락의 승리 투수는 한화 소속이던 2022년 6월 3일 대전 키움전(2⅓이닝 3탈삼진 무실점) 이후 312일 만이다.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신정락은 한화에서 방출이 됐지만 롯데의 부름을 받고 현역 생활을 이어갔고 팀 승리까지 이끌었다. 경기 후 신정락은 "타이트한 상황이었지만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라갔다. 야구를 하면서 외국인 오른손 타자 상대를 많이 해 봤기에 편하게 상대할 수 있었다"라면서 "팀원들 모두 착하고 다정하게 대해줘서 팀에 잘 녹아든 것 같다. 팀원들 덕분에 첫승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동료들에게 첫 승의 공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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