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산 2000이닝 대기록을 세운 날, 김광현(35)이 고개를 숙였다. 믿었던 김광현이 3이닝 만에 내려갔지만 SSG는 무너지지 않았다. 짜릿한 5점차 뒤집기와 함께 송영진(19)이라는 새로운 희망까지 발견했다.
김광현은 지난 8일 대전 한화전에서 3이닝 8피안타(1피홈런) 4볼넷 1탈삼진 5실점으로 무너졌다. 타선 도움을 받아 패전은 면했지만 김광현이 한 경기에 5자책점 이상 내준 것은 SK 시절이었던 지난 2018년 10월4일 문학 KIA전(2이닝 5실점 패전) 이후 5년 만이다. 지난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뒤 가장 좋지 않은 투구였다.
2회 선두타자 채은성에게 던진 3구째 133km 슬라이더가 한가운데 몰리는 실투가 되면서 좌월 솔로 홈런으로 첫 실점했다. 다음 타자 브라이언 오그레디에게 중견수 앞 2루타를 맞으며 이어진 1사 3루에선 제구가 흔들렸다. 장운호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한 뒤 최재훈에게 던진 초구 체인지업이 원바운드 폭투가 됐다. 다음 3개의 공도 모두 존을 벗어나며 두 타자 연속 스트레이트 볼넷. 김광현답지 않은 8구 연속 볼이었다.
계속된 1사 만루에서 오선진에게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추가 실점한 김광현은 이원석에게도 1B-2S 유리한 카운트에서 3연속 볼로 볼넷을 내줬다. 조웅천 SSG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흐름을 끊은 뒤 정은원을 1루 땅볼 유도하며 어렵게 2회를 마쳤지만 3회 추가 3실점으로 무너졌다.
선두 노시환에게 던진 초구 커브가 중월 2루타로 연결됐다. 채은성과 오그레디를 범타 유도하며 2사 1루가 됐지만 이닝 마지막 아웃카운트 잡기가 힘들었다. 김태연, 장운호, 최재훈에게 모두 체인지업을 공략당하며 순식간에 3실점했다. 이어 오선진에게도 투스트라이크 유리한 카운트에서 직구를 맞아 4연속 안타를 허용했다.
이원석에게 또 스트레이트 볼넷을 주며 만루 위기를 자초한 김광현은 정은원을 3루 파울플라이로 잡고 어렵게 이닝을 끝냈다. 3회까지 총 투구수 70개로 직구(15개)보다 체인지업(29개), 슬라이더(19개), 커브(7개) 등 변화구 구사 비율이 높았다. 직구 구속이 최고 144km, 평균 142km에 그칠 만큼 평소 같지 않았다. 여러모로 김광현답지 않은 투구였다.
비록 이날 경기는 아쉬웠지만 김광현은 한국에서 14시즌 1855이닝,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2시즌 145⅔이닝으로 한미 통산 2000이닝(2000⅔) 대기록을 달성했다. 역대 KBO리그에서 통산 20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는 송진우(3003), 정민철(2394⅔), 이강철(2204⅔), 김원형(2171), 배영수(2167⅔), 양현종(2161⅓), 한용덕(2080) 등 7명밖에 없다. 해외리그를 포함하면 한미일 통산 2156이닝을 던진 박찬호, 한미 통산 2272⅓이닝을 던진 류현진 그리고 김광현까지 모두 10명만이 달성한 대기록이다.
0-5로 뒤진 상황에서 내려간 김광현은 타선 도움으로 패전을 면했다. 5회 전의산의 스리런 홈런으로 추격을 알린 뒤 6회 최정의 희생플라이, 8회 김강민의 희생플라이로 동점을 만들어 김광현의 패전 요건을 지웠다. 연장으로 승부를 끌고 간 뒤 10회 1사 후 3연속 안타와 상대 실책을 묶어 2점을 내며 7-5 역전승을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송영진(3이닝), 백승건(1이닝), 최민준(1이닝), 노경은(⅓이닝), 고효준(⅔이닝), 서진용(1이닝)으로 이어진 구원투수 6명이 7이닝 무실점을 합작했다.
특히 4회 김광현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나온 신인 송영진의 투구가 인상적이었다. 3이닝 동안 42개 공을 던지며 볼넷 2개만 내줬을 뿐 안타 없이 삼진 3개를 잡으며 무실점 호투한 것이 역전승 발판이 됐다. 최고 148km 힘 있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존 구석구석으로 꽂으며 한화 타선을 잠재웠다.
주자가 있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공을 뿌렸다. 6회 1사 2루에서 노시환을 상대로 초구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직구로 연속 헛스윙을 뺏으며 3구 삼진 처리한 게 백미. 다음 타자 채은성도 4구 만에 슬라이더로 3루 땅볼 유도하며 득점권 위길를 벗어났다. 경기 후 김원형 SSG 감독도 “송영진이 신인이지만 3이닝 동안 자기 투구를 잘해줬다. 따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대전고 출신으로 2라운드 전체 15순위로 SSG에 지명된 우완 송영진은 시범경기에서 최고 150km를 뿌리며 공격적인 투구를 펼쳤다. 김원형 감독에게 “마운드에서 떨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던진다”는 호평을 받으며 개막 엔트리까지 올랐다. 지난 2일 문학 KIA전에서 구원 1⅔이닝 1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데뷔전을 치렀고, 이날은 3이닝 롱릴리프로 추격조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광현이 보기 드물게 무너진 날, SSG는 송영진이라는 미래를 발견하며 역전승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