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마다 척척…작두 탄 이승엽의 야구에 기대한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3.04.02 10: 25

[OSEN=백종인 객원기자] 출근 첫 날부터 빡세다. 기약 없는 연장 근무다. 11회 초. 설상가상이다. 리드까지 뺏겼다. 9-10으로 세번째 역전이다. 데뷔전 패배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돌아선 말 공격, 희망은 있다. 타순이 1번부터다. 아니나 다를까. 정수빈이 불을 지핀다. 우익수 앞 안타로 물꼬를 틀었다. (1일 잠실, 두산-롯데전)
빠른 주자다. 그라운드에 긴장감이 감돈다. 상대도 위험을 감지한다. 즉각 데프콘 발동이다. 마운드에서 긴급 미팅이 열린다. 배영수 코치가 문경찬을 다독인다. 견제구가 거푸 1루로 날아간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그런 뜻이다.
하지만 웬걸. 아랑곳 않는다. 2구째. 승부를 건 사인이 나온다. 주자는 스타트, 타자는 공격이다. 과감한 치고-달리기다. 때마침 허경민의 타구는 시원한 라인드라이브다. 중견수 앞까지 훨훨 날아간다. 작전은 기가 막힌 성공이다. 무사 1, 3루. 최고의 기회가 열린다.

1일 잠실 개막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12-10 역전승을 거둔 이승엽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2023.04.01 /jpnews@osen.co.kr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자칫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다. 그럼에도 보내기 대신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핵심은 타이밍이다. 카운트 1-0이었다. 상대는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 단순한 직구는 아닐 것이다. 문경찬의 주무기 슬라이더가 유력하다. 마침 허경민은 앞 타석에서 슬라이더 반응이 괜찮았다(8회 중견수 라인드라이브, 상대 투수 이민석).
벤치의 결단이 혈을 뚫었다. 상대에 유효타를 안기며, 공격의 실타래를 풀어냈다. 분위기가 뜨거워진다. 곧바로 다음 공이다. 단번에 승부가 결정된다. 북엇국, 콩나물국도 거뜬히 해치우는 새 외국인이다. 호세 로하스가 팬들에게 속 시원한 해장국을 선사한다. 125미터짜리 스리런으로 퇴근 벨을 울린다.
연장 11회말 무사 1, 3루에서 두산 로하스가 끝내기 스리런포를 날리고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023.04.01 /jpnews@osen.co.kr
작두 신공은 8회 말에도 선보였다. 8-8 동점일 때다. 이번에는 차분한 스몰 볼이다. 선두 양석환이 볼넷을 얻었다. 여기부터 구상한 시나리오대로다. 우선 대주자 조수행의 투입이다. 빠른 발로 움직이겠다는 암시다. 그러자 상대가 알아서 도와준다. 견제구를 빠트린다. 2루를 공짜로 얻었다.
이후에는 착실한 진행이다. 김인태 타석에 욕심 부리지 않는다. 1점이면 충분하다. 안정적인 보내기 사인이다. 얌전한 번트가 3루쪽으로 편안하다. 1사 3루로 기회가 열린다.
다음 타자는 이유찬이다. 혼란은 없다. 뚜렷한 방향을 설정해준다. 짜내기 작전이다. 다만 위험성을 낮춘다. 세프티 스퀴즈 방식이다. 번트를 보고, 주자가 스타트하는 안전 장치를 건다. 조수행의 달리기 실력과 이유찬의 센스가 최적의 조합을 이룬다. 기다리던 9점째가 올라간 순간이다.
“8회 이유찬에게 스퀴즈 번트를 지시했는데, 작전 수행을 잘했다. 11회말에 기회를 만든 정수빈, 히트 앤드 런 작전을 성공시킨 허경민도 좋았다.” (경기 후 이승엽 감독)
가장 어렵다는 라인업 짜기도 잘 이뤄졌다. 승리한 뒤 이렇게 복기했다. “좌타자 로하스의 타순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2번과 3번을 놓고 갈등했는데, 롯데 불펜에 왼손 투수가 한 명뿐이라는 점에 착안해 3번에 넣었다. 결국 4번(김재환)까지 모두 좌타자를 기용했는데 일단 오늘은 적중했다. 5번 양의지 효과도 괜찮았다.”
1일 잠실 개막전에서 두산 이유찬이 8회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키고 있다. 2023.04.01 /jpnews@osen.co.kr
때로는 약하게(번트), 때로는 강하게(히트 앤드 런). 기민한 작전이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덕분에 종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타순도 적절했다. 최대의 효율을 발휘한 라인업으로 12점이나 생산했다.
벤치의 수싸움은 그런 것이다. 막힌 혈을 뚫어주고, 원활한 흐름을 이어준다. 이승엽 감독의 경기 운영은 초보답지 않았다. 적극성과 과감함이 돋보였다. 던지는 수순마다 척척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극적인 역전 끝내기 승리를 이뤄냈다.
다만, 조심해야 할 지점이 있다. 손바람에 취하면 곤란하다. 신바람을 너무 내면 안된다는 뜻이다. 벤치의 개입은 과하면 독이 된다. 필요할 때만 최소한으로 참아야 한다. 때로는 수를 보고도 두지 말아야 한다. 그게 고수의 경지다. 어쨌든 경기는 선수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국 김재환의 3점슛, 그리고 로하스의 스리런포가 결과를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국민 타자는 선이 굵었다. 그 앞에서는 숱한 잔재주들이 무릎을 꿇었다. 강렬하고, 압도적인 스윙으로 많은 것을 이겨냈다. 그렇게 찬란한 자취를 만들어냈다. 그런 야구가 강한 야구다. 감독 이승엽의 야구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날 시구자로 나선 국민 감독의 야구처럼 말이다.
1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롯데의 개막전에 앞서 이승엽 감독이 시구자로 나선 김인식 전 감독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2023.04.01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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