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사무라이 재팬 세계 1위 고수…WBSC랭킹 발표, 미국과 큰 차이, 한국은 5위’. 일본 매체 풀카운트의 29일 어느 기사 제목이다. 이 글은 이날 야후 재팬의 코멘트 랭킹 8위까지 올랐다. 12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 덕분이다.
기사 내용은 우리 쪽에도 많이 보도됐다. 일본이 2위 미국과의 차이를 더 벌렸다. 랭킹 포인트 5323대4402. 921점이나 앞서게 됐다. 물론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WBC 우승으로 한껏 기고만장한 상태 아닌가. 큰 의미 없는 세계 랭킹이라도, 이 타이밍에는 먹히는 뉴스 아이템이다.
하지만 제목이 좀 그렇다. 굳이 한 단계 떨어진(4위→5위) 한국을 끼워 넣는다. 그것도 가장 끝 자락에 말이다. ‘…한국은 5위’. 이렇게 낚시 바늘을 건다. 노림이 뻔한 수작이다. 조회수, 댓글을 부르는 꼼수다.
반응이 좋을 리 없다. ‘예전 이치로 선수의 말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이제 한국을 라이벌이라고 부르지 말자’ ‘한국은 야구 관련 미디어나 선수의 의식과 품격이 몇 단계 뒤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승리한 뒤 마운드에 깃발을 꼽는 행동을 최고의 장면으로 치는 나라는 안된다’. 이런 지적과 비판이 댓글창에 등장한다.
WBC 우승으로 일본의 기세가 등등하다. 매일 오타니 쇼헤이 소식으로 뉴스가 도배된다. 구리야마 히테키 감독, 다르빗슈 유, 라스 눗바도 단골 손님이다. “사실은 그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런 식의 대회 뒷얘기가 한창이다.
당연한 권리다. 승리의 보상 같은 것이리라. 충분히 누리고, 즐길 만하다. 그만큼 좋은 경기력을 보였고,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국 얘기를 자꾸 곁들인다. 3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그러면서 무엇이 문제고, 왜 안되는 것이고, 어떤 것을, 어떻게 고쳐야 한다는 점을 시시콜콜하게 지적한다.
분슌 온라인이라는 미디어가 있다. 60년 넘은 대중 매체 슈칸분슌(週刊文春)의 인터넷 판이다. 유명인을 밀착 취재하는 파파라치 보도로 유명한 곳이다. 일부는 황색 언론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매체가 며칠 전 분석 기사를 실었다. ‘병역, 이지메에 붕괴한 한국야구의 잔혹한 이야기’라는 제목이다. 한국에 주재하는 기자의 코멘트를 인용해 일본전 대패를 이렇게 전한다. “이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큰 충격을 받은 상황이다. 7회까지 10명의 투수를 투입했지만 전혀 막지 못했다. 일본에서 퇴단한 수아레스를 데려가는 등 안이한 보강을 계속하는 리그다. 선수를 키우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실었다.
그러면서 제기한 지적이 병역 문제다. 매체는 ‘2006년 대회 때는 4강에 들어가면 병역 면제라는 특례를 적용했다. 그러나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 문제로 이후 폐지됐다. 그러더니 오랫동안 1라운드 돌파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근은 사라지고, 채찍만 남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비단 이 곳 만이 아니다. 각종 커뮤니티의 댓글을 통해서도 비난과 지적질이 끊이지 않는다. ‘징병제도가 스포츠 발전의 폐해인 것은 맞다’ ‘선수로 한창 나이에 군대를 가야한다면 능력을 발휘하는 데 큰 문제다’ ‘병역은 20세기의 유물이다’ ‘병역 면제라는 당근을 매달아 단기적인 결과만 기대하면 안된다’ 같은 반응들이다.
물론 자축하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1, 2회 대회 이후 14년만의 우승이다. 오타니 쇼헤이라는 자랑거리를 마음껏 과시했다. 대단한 승리였고, 인상적인 게임이었다. 얼마든지 취하고, 마음껏 즐겨도 그만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야 한다. 굳이 남의 패배까지 곁들일 필요는 없다. 가뜩이나 분하고 아픈 상처다. 그걸 헤집는 일이다. 실패한 원인을, 문제점을 왜 자기들이 지적하는가. 왜 분석이라는 명목으로 가학성을 드러내는가.
무엇보다 병역은 훨씬 민감한 영역이다. 국가의 기본을 따지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어떤 것에도 우선해야 할 의제다. 감히 그것 때문에 국제 대회 성적이 떨어지고, 그게 패배의 원인이라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엄연한 참견이고, 침해다.
우리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통렬한 과정을 거쳤다. 어렵게 국민적 합의를 이뤄낸 사안이다. 어쭙잖게 남이 따질 일은 아니다. 잊어야 할 역사를 가진 이웃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기고만장, 의기양양, 오만불손.
부디 그들의 승리가 이런 말들로 퇴색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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