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휘날리던 윤산흠(24·한화)이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했다. “멋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윤산흠의 ‘낭만 야구’ 시즌2가 시작됐다.
윤산흠은 올해 시범경기에서 필승조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다. 4경기에서 1승3홀드를 거두며 4이닝 4피안타 2볼넷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 중이다. 벌써 최고 구속 150km이 나올 만큼 힘이 넘친다. 낙차 큰 너클 커브도 높낮이를 활용한 직구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윤산흠은 “이 시기에 150km를 던진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캐치볼을 시작했는데 예년보다 2주 정도 빨라 한 것이다”며 “몸을 잘 쓰고 싶어 필라테스도 병행했다. 캠프에 가서 순발력 운동도 하면서 스피드가 올라온 것 같다.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1~2km 빨라졌다”고 밝혔다.
178cm 74kg으로 체격이 작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오버핸드 투수인 윤산흠은 스트라이크존 좌우보다 상하를 적극 활용한다. 그는 “내가 던지는 공 특성상 위아래를 많이 사용할수록 유리하다. 코치님과 포수 형들도 하이 패스트볼을 많이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군에 있을 때부터 포수 박상언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윤산흠은 “포수 미트보다 한두 개 정도 높게 보고 던진다. 공이 잘 눌리면 낮게 깔릴 때도 있다”며 “코치님들도 굳이 모서리 보고 던지지 말고 가운데를 보고 높게 낮게만 공격적으로 던지라고 주문하신다”고 말했다.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하이 패스트볼이 좋지만 낮게 깔려 들려오는 직구도 타자를 얼어붙게 하는 힘이 있다.
150km는 강속구의 상징이지만 최근 2년간 입단한 문동주, 김서현 그리고 트레이드로 온 한승혁까지 파이어볼러가 눈에 띄게 늘어난 한화에선 명함을 내밀기 쉽지 않다. 윤산흠은 “볼 빠른 투수들이 많아져서 저 정도는 기교파”라며 웃은 뒤 “팀 내에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많아져 도움이 된다. 캐치볼을 할 때부터 어떻게 힘을 쓰지는 보고 내게 맞춰 연습을 해보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윤산흠은 만 24세 젊은 나이에도 야구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교 시절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독립리그에 갔다 2019년 두산에 육성선수로 입단했지만 2년간 2군만 있다 방출됐다. 다시 독립리그로 가서 프로 도전을 했고, 지난 2021년 6월 한화와 육성선수 계약을 했다. 그해 9월말 1군 데뷔 꿈을 이뤘고, 지난해에는 1군에서 37경기 1승1패3홀드 평균자책점 2.67로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33⅔이닝 동안 46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놀라운 구위를 뽐냈고, 올해는 첫 1군 스프링캠프를 거쳐 시즌 시작부터 필승조 진입을 노린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윤산흠은 마운드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내려오는 투수다. 그런 모습으로 꾸준히 성장했고, 지금 이 위치에 있다. 위기 관리 능력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 제구만 조금 더 보완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8~9회 셋업맨과 마무리로 성장할 것이다”고 기대했다. 윤산흠도 “이기는 상황에 나가면 더 재미있다. 마운드에서 즐기려고 하다 보니 결과도 괜찮게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련을 극복한 야구 인생과 유니크한 투구폼 그리고 긴 머리까지 윤산흠은 ‘낭만 야구’의 주인공과 같았다. 지난해 시즌 막판 긴 머리를 정리한 그는 “머리를 자르니 잘 못 알아보시는 것 같다”며 웃은 뒤 “2년 정도 머리를 길러 봤으니 이제 짧은 머리를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아직 쌀쌀한 요즘 날씨에도 반팔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는 윤산흠은 “던질 때 불편한 게 싫어 긴팔을 안 입는다. 옷도 크게 입는 스타일이다. 멋있는 것도 중요한지만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