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려고 간 건 아니었지만 실패 속에 느낀 게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푸른 피의 에이스' 원태인(삼성)이 WBC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소감을 전했다.
원태인은 WBC 대표팀 합류를 앞두고 "'야구 대축제'라고 불리는 WBC 대회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 뿌듯하다. 도쿄 올림픽의 아쉬움을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원태인은 지난 7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 돔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공식 평가전부터 13일 WBC 1라운드 B조 예선 4차전인 중국전까지 1주일 동안 4차례 마운드에 올라 총 108개의 공을 던졌다.
지난 7일 한신과의 평가전(27개), 9일 1라운드 호주전(26개), 10일 일본전(29개)에서 내리 마운드에 올라왔다. 4일 동안 82개의 공을 몰아서 던졌다. 그리고 한국의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된 가운데 중국전에 선발 등판, 1이닝 동안 26개의 공을 던지며 3피안타 1볼넷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19일 대구 KT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원태인은 "배우려고 간 건 아니었지만 실패 속에 느낀 게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면서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고 솔직히 라커룸에서 야구를 보다가 왔는데 다들 엄청 즐기는 것 같았다. 우리는 즐기기보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섰던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일본 대표팀 투수들의 투구를 유심히 지켜봤던 원태인은 "한국 투수들은 상체 위주로 공을 세게 던지려고 하는데 일본 투수들은 그렇게 세게 던지려고 하지 않는데도 150km 그냥 나오더라.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밸런스를 봤다. 팀에 합류한 뒤 캐치볼할 때 그런 이미지를 그려놓고 있는데 많이 배우고 왔다"고 했다.
대회를 앞두고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와 맞붙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던 원태인. 아쉽게도 오타니와의 맞대결은 무산됐지만 대단한 선수라는 걸 느꼈단다.
"정말 멋지더라. 도쿄돔에 5만 명 정도 들어오는데 선수 소개할 때도 그렇고 야구가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데 거기서 최고로 인정받는 선수 아닌가. 무엇보다 정말 겸손한 스타 플레이어라는 걸 느꼈다. 그라운드에서 인사하고 공을 줍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 겸손하더라". 원태인의 말이다.
WBC 대표팀에 참가했던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는 15일 고척 KIA전을 앞두고 "일본에 너무 크게 지고 말았다. 그래도 일본에서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실 국제 대회가 있을 때만 대표팀을 소집한다. 그런데 일본은 매년 대표팀을 소집해 경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KBO가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친선 경기 같은 것을 많이 하면서 어린 선수들이 대표팀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원태인은 "정후 형 인터뷰를 봤는데 일본과 친선 경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솔직히 잠실구장에서 만원 관중 그래도 3만 명이 안 되는데 5만 명 앞에서 처음 던지는 투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잠실구장 만원 관중 앞에서 던진 경험이 있는 투수들도 솔직히 별로 없다. 가을 야구를 가야 느낄 수 있는 거고. 그런 무대를 경험해 봐야 다음 대회에 실패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저도 그런 무대가 처음이지만 평소 관중이 많은 무대를 즐기고 힘을 얻는 편이라 괜찮지만 모두 저와 같지 않다. 큰 무대에서 긴장이 되어 자기 공을 못 던지는 투수들이 있는데 많은 관중 앞에서 던지는 경험을 해봐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태인은 체력 저하로 인해 중국전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체력이 부쳤다는 건 다 변명이다. 그날 최선의 피칭을 했는데 중국 선수들의 직구 노림수가 좋았다. 예상과 달리 맞긴 했는데 힘이 떨어져 그런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못 던진 것"이라고 자신의 탓으로 여겼다.
예년보다 일찍 시즌을 준비하면서 체력 저하를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에 "제가 직접 느끼지 못했지만 힘든 부분이 있다고 본다. 큰 대회에서 모든 걸 쏟아부었으니 예년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회를 앞두고 박진만 감독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삼성 소속이 아닌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로서 모든 걸 바치고 오자는 생각이었고 다 바치고 왔다. 이제 팀에 복귀했으니 팀을 위해 다 바쳐야 할 때다. 운동 열심히 하고 쉴 때 잘 쉬어야 한 시즌을 길게 잘 끌고 갈 수 있다"고 했다.
또 "WBC 대회를 경험했던 선배들이 '한국에 가면 분명히 힘들 거다. 겪어보지 못한 게 있을 거다. 시즌 들어가기 전까지 무리하지 말고 페이스를 천천히 끌어올려도 되니까 초반에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저 또한 급하게 시즌에 맞추지 않을 생각이다. 코치님께서도 투구 수를 조절해주신다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이강철 감독을 향해 진심 가득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원태인은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미국에 있을 때 정말 좋지 못한 공을 던지고 있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50%도 나오지 않았다. 감독님께서 지켜보시다가 미국 애리조나 캠프 마지막에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셨다. 그때부터 밸런스가 잡히기 시작했다. 감독님 덕분에 땅바닥에 있던 제가 엄청 많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원태인은 이어 "한신전에서 27개만 던지고 내려갔는데 '호주전 되겠냐'고 하셔서 너무 감사했다. 저는 중국 또는 체코전 생각했는데 그렇게 중요한 경기에 저를 믿고 내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지금도 정말 감사드리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주장 김현수(LG 트윈스)는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이에 원태인은 "현수 형은 도쿄 올림픽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았고 이번에도 주장을 맡으면서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고 했다. 우러러봤던 대선배님과 마지막 대회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너무 감사드린다"고 했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