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WBC 예선탈락으로 부진했던 대표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한국야구 국가대표팀이 3회 연속 원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에서 탈락하면서 한국야구 전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WBC 호성적을 기폭제로 한국프로야구 부흥을 꾀하려던 야구계는 당황스럽다. 특히 숙적 일본에 완패, ‘한국야구 이대로는 안된다’며 야구계에서 여러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야구계에 시급한 현안들부터 짚어보며 발전방향을 설정하는 긴급진단을 해본다. [편집자주]
▲알루미늄배트 재도입, 연구 중이지만 당장 도입은 없다
국가대표팀이 예선에서 탈락하자 일각에서는 고교야구에서 나무배트를 쓰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반발력과 경제성이 좋은 알루미늄배트 대신 나무배트를 쓰면서 타자는 장타력이 부족해졌고 투수들의 성장이 더뎌졌다는 진단이었다. 또 경쟁국인 미국과 일본 아마야구에서는 알루미늄 배트를 쓰고 있다며 한국도 하루 빨리 알루미늄 배트를 재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하지만 아마야구를 관장하는 기구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알루미늄 배트 재도입에 신중한 모습이다. KBO 사무총장 출신인 양해영 야구협회 실무부회장은 “거포 육성에 문제가 있다며 나무배트를 재도입해야 하는 주장이 몇 년 전부터 있어왔다. 그래서 야구협회에는 2차례 현장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는 반반이었다. 문제가 있어 알루미늄배트를 다시 써야 한다는 지도자들이 절반 있는 반면에 예전에 도입 때를 생각해보자며 반대하는 지도자들도 많다”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또 양 부회장은 “협회차원에서 과학적인 검증 방법과 통계자료를 찾아보는 등 좀 더 연구해볼 작정이다. 당장 도입할 수도 있지만 양쪽의 장단점을 충분히 숙고하고, 시간을 갖고 도입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근년 들어 국제대회에서 우리 청소년대표팀이 일본대표팀을 많이 이겼다. 그럼 일본은 알루미늄배트 대신 나무배트를 써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냐”며 나무배트 논란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사진]고교야구 거포발굴을 위해 알루미늄배트 재도입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이 리틀야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모습
1970년대부터 아마야구는 알루미늄배트를 사용해왔다. 강한 반발력으로 타구속도가 빨라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는 일도 잦았다. 그러던 차에 2000년대 들어 국제연맹에서 나무배트 규정을 만들어 한국아마야구계도 알루미늄배트 대신 나무배트를 쓰게 됐다. 나무배트는 부상 위험이 덜한 대신 어린 선수들에게는 무거워서 거포로 성장하는 데 제약이 있다. 반면 투수들은 타자 제압에 유리하다는 평이다. 그결과 타자는 장거리 타자로 성장하지 못한 채 일명 ‘똑딱이’에 머물고, 투수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디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반해 알루미늄 배트는 선수 부상 위험 탓에 미국과 일본에선 반발력을 줄인 규정배트를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나무배트보다 선수 성장면에서 확실하게 앞선다는 확신은 없는 상황이다.
▲"바보야, 문제는 선수야. 방망이를 칠 선수가 없어"
아마야구계에서는 나무배트 문제보다는 유소년 야구 선수 부족난을 더 크게 걱정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한국야구계 특히 초등학교에서 야구선수난이 심화되고 있다.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어린아이가 갈수록 줄어드는 시점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초등학교 야구부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선수들이 더욱 부족해진 것이다.
코로나는 한국만이 아닌 전세계적인 문제였지만 야구 인프라가 미국이나 일본 등과 비교해 떨어지는 한국야구계에선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전통이 있는 전국의 초등학교 야구팀들이 없어지더니 코로나를 거치면서 현재는 이전보다 초등학교 야구선수 숫자가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야구인은 “요즘 중학교 야구부 감독들은 초등학교 6학년 선수들 스카우트하는 일이 주요과제다. 중학교는 초등학교 선수가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선수 보강을 못해 팀을 제대도 운영하기 힘들 지경이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학생야구 감독 중에서 가장 좋은 자리가 중학교 감독이었는데 격세지감”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초등학교와 리틀야구 선수들이 많아 중학교 감독들은 선수 부족이 없었고 선수가 고교에 진학 때에는 여러 고교 감독들이 좋은 선수를 서로 데려가기 위해 로비를 할 정도였기에 중학교 감독은 아쉬울 것이 없었다고. 중학교 감독은 양쪽으로 ‘갑’의 위치였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 초창기 스타출신으로 한화 이글스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던 유승안(67)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은 “리틀야구팀은 코로나 이전부터 그래도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야구부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지금 중학교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하는 4년후부터 상당기간 신인지명에서 우수 선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게 되면 한국야구가 뒷걸음질 칠 수도 있어서 걱정이라고.
[사진]심각한 선수 부족난 속에서도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리틀야구 선수들
▲부상 투수 야구중단시키는 지명타자제 없애야 한다
유회장은 또한 고교야구부터 실시하고 있는 지명타자제도를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그는 “고교야구 지명타자제는 일부 고교감독들이 좀 더 많은 선수들에게 출전기회를 제공하고 대학 진학 등을 위한 성적자료를 만들려고 도입한 제도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뜩이나 부족한 선수자원에서 지명타자로 인해 중도하차하는 선수들이 있다. 일례로 투수를 하다 부상을 당한 선수가 타자로 야구로 다시 도전해야 하는데 지명타자제로 인해 설자리가 없기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에게 투타를 모두 가르쳐야 하는데 수험생에게 영어, 수학 중 한과목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하는 것과 같다”며 지명타자제 폐해를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국아마야구에서는 대학때까지 지명타자제를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마야구에 지명타자제가 없으면 학생선수들이 투수와 타자 모두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부상 등을 당하면 이후 뛸 기회가 없어 야구를 중도에 그만두게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투수로 활동하던 선수는 반쪽이 돼 야수로 전환할 기회가 없어진다고. 야구에 재능있는 재원이 일찍 야구를 포기하는게 안타깝다고 한다. 부족한 아마야구 선수난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이참에 한국야구가 근본적으로 발전방안을 찾으려면 그 뿌리인 아마야구에 더 투자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프로야구에서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면서 거시적으로는 아마야구 발전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프로야구기구 KBO가 지금도 야구협회에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지만 KBO 10개 구단이 아마야구 선수와 구장 인프라 보강에 더 관심을 가질 시점이다.
박선양 OSEN 스포츠국장 sun@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