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은퇴한 지 9년이 된 ‘기술 영업직’ 영국 투수가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 마이크 트라웃(32·LA 에인절스)과의 천적 관계를 재확인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영국 대표팀 우완 투수 다니엘 쿠퍼(37)가 그 주인공이다.
쿠퍼는 지난 12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스에서 벌어진 2023 WBC 1라운드 C조 미국전에 1-5로 뒤진 6회 구원등판, 2이닝 2피안타 1탈삼진 1실점으로 막았다.
특히 7회 2사 2루에서 트라웃을 9구 승부 끝에 83.5마일(134.3km) 몸쪽 싱커로 중견수 뜬공 처리하며 실점 위기를 넘겼다. 트라웃은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쿠퍼에겐 천적 관계를 재확인한 순간이었다.
14일 ‘MLB.com’에 따르면 쿠퍼는 트라웃 상대로 비공식 연습 및 시범경기를 포함해 통산 7차례 맞붙어 볼넷 1개를 내줬을 뿐 6타수 무안타로 절대 우위를 보였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하고 은퇴한 쿠퍼라 트라웃과 상대 전적은 모두 마이너리그에서 쌓은 기록이다.
지난 2010년 5월15일 싱글A 미드웨스트리그에서 트라웃을 상대한 쿠퍼는 “트라웃이 내게 5타수 무안타라고 말했는데 동료들이 ‘이제는 6타수 무안타’라고 알려줬다. 마이너에서 트라웃과 몇 번 맞붙었는데 이렇게 돌고 돌아 만나게 되다니 멋진 일이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2009년 드래프트에서 21라운드에서 전체 623순위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된 우완 투수 쿠퍼는 마이너리그에서 3시즌 통산 112경기(167이닝) 11승8패13세이브 평균자책점 4.80을 기록한 것이 전부. 흉곽 출구 증후군으로 공을 던지는 손가락 감각이 무뎌진 게 선수 생명을 단축시켰다.
결국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한 채 2014년 호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 올해로 프로야구 선수를 그만둔 지 9년째이고, 현재는 기술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나라인 영국 대표팀으로 이번 WBC에 나왔다. 최고 구속은 85.8마일(138.1km)에 그쳤지만 맞혀 잡는 투구로 역투했다. 경기는 영국의 2-6 패배.
모처럼 마운드에 올라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들을 상대했지만 쿠퍼는 “내가 오랫동안 투구를 하면서 느낀 스트레스 중 가장 적었다”며 “야구는 아이들이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트라웃, 무키 베츠, 놀란 아레나도, 폴 골드슈미트 등 명예의 전당급 선수들을 상대하는 우리 모습을 영국 아이들이 보고 야구를 시작할 수 있다. 밑바닥부터 야구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고 WBC 참가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번 영국 WBC 대표팀 선수 중 22명이 미국 태생이지만 이들은 영국 야구 성장이라는 임무에 책임감을 갖고 있다. 미국에 이어 13일 캐나다전에도 7회 콜드패(8-18)를 당한 영국은 14일 콜롬비아를 7-5로 꺾고 WBC 본선에서 사상 첫 승을 신고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