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내내 우여곡절이 많았다. 모두가 실패의 이유와 원인을 쏟아냈다. 그런데 내부 사정은 잘 모르는 인물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나 파고 들어가면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 했던 비난들이었고 가슴에 비수를 꽂게 됐다.
한국 야구는 또 다시 실패를 맛봤다. 2013, 2017 대회에 이어 2023 대회까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3번의 대회 연속해서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고 한국 야구 부활이라는 사명감까지 짊어지고 대회에 나섰지만 이런 짐이 결국 독이 됐다. 부담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무게가 선수들에게는 더 크게 다가오는 듯 했다.
15년의 국가대표 커리어를 갖고 있는 김현수는 과거의 영광부터 현재의 쇠퇴를 모두 경험했다. ‘국제용 선수’라는 칭호가 딱 어울렸다. 이번 대회 전까지 대표팀에서만 59경기 타율 3할6푼4리(209타수 76안타) 4홈런 46타점의 성적을 남녔다. 그러나 이제 그는 “코리아 유니폼을 입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면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김현수는 대표팀의 리더였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부터 2019년 프리미어12 2021년 도쿄올림픽, 그리고 2023년 WBC까지 4개 대회 연속 대표팀 주장을 맡는 등 대표팀을 앞장서서 이끌었던 김현수이기에 태극마크의 부담, 주장의 고충 등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제가 부족한 탓에 선수들을 잘 못 이끌어서 좋은 성적 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첫 경기부터 제가 긴장해서 선수들도 긴장한 것 같다. 마음이 아프다”라면서 자기 자신을 자책했다.
그러나 김현수는 대표팀을 떠나면서도 올해 WBC를 지켜보면서 이런 저런 말을 내뱉고 도 넘은 비난을 했던 야구인 선배들을 향해서 다시 날 선 비판을 했다. 그는 “대표팀에 많이 나오셨던 선배들한테는 위로의 말을 많이 들었다”라면서 운을 뗀 이후 “그런데 아닌 분들이 많이 쉽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 저희와 같은 야구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아쉬운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대표팀의 성적을 향한 비판은 어쩔 수 없다. 김현수는 선수들도 당연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같은 야구인으로서 도를 넘은, 수위 높은 발언은 선수들의 좌절감을 더욱 배가시킨다. 김현수도 보통의 비판을 갖고 작심해서 말을 내뱉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최근 일부 야구인들이 유튜브 등 팬들과 소통하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구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자극적인 말들을 내뱉기도 했다. 칭찬보다 비난에 더 환호하는 사회상에서 이들의 발언은 더욱 파급력 있게 다가온다.
대표팀에서 가장 고감도 타격감을 자랑한 이정후는 “세계의 벽은 높았다. 우리가 세계 많은 선수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회였다”라고 현실을 지적했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것과 별개로 세계 야구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한국은 그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선수들이 체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만의 화려한 영광에만 사로잡힌 채, 야구계 어른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은 현실을 모르고 자극적인 비난만 늘어 놓었다. “중국한테 지면 들어오지 말아야 한다. 그냥 일본에서 사회인 야구나 뛰고 국가대표도 때려치워야 한다. 올 거면 배타고 오라고 해라”는 작심발언을 빙자한, ’키보드 워리어’들이나 쓸 법한 말을 서스럼 없이 내뱉었다.
선수들의 심리, 야구계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면서 건설적인 비판과 대안을 내놓는 게 ‘참선배’이자 ‘대선배’일 것이다. 이번 WBC에서 SBS 해설위원으로 참여했고 국가대표 터줏대감이자 조선의 4번타자’였던 이대호는 대회 도중, “분명히 비난받을 만한 성적이다. 비난받을 준비도 되어 있을 거다”라면서도 “우리 선수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고 최선을 다한 것을 우리가 모르는 게 아니다. 선수들도 지고 나면 화도 나고 또 분해서 잠도 못 잔다. 우리 선수들을 끝까지 믿고 응원해주셨으면 한다”라고 선수들을 응원하면서도 건설적으로 비판했다.
야구인들 모두가 이제는 머리를 맞대고 한국 야구의 국제대회 부진을 면밀히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자극적인 비난만 늘어놓으면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군에 ‘내부총질’을 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모두가 한국 야구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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