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와 같은 단기전에 선발 투수를 '1+1'으로 붙여서 쓰는 것은 곧잘 볼 수 있다. 선수 보호를 위한 투구수 제한 제도가 있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더욱 '1+1'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일본 대표팀이 완벽한 '1+1'으로 깔끔한 마운드 운영을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 대표팀의 투수 운영은 우왕좌왕했다.
일본은 중국전에 선발 오타니 쇼헤이(4이닝 무실점)에 이어 도고 쇼세이가 3이닝(1실점) 책임졌다. 한국전에는 선발 다르빗슈 유(3이닝 3실점)가 흔들리자 곧바로 이마나가 쇼타를 올려 3이닝 1실점으로 경기 중반 흐름을 가져갔다.
체코전에는 선발 사사키 로키(3⅔이닝 1실점)에 이어 불펜 우다가와 유키가 1아웃만 책임졌고, 5회부터 미야기 히로야가 올라와 5이닝 1실점 세이브를 기록했다. 호주전에는 선발 야마모토 요시노부(4이닝 무실점)에 이어 다카하시 규지가 올라와 2이닝 무실점으로 징검다리를 놓았다.
지난해 도고는 12승 8패 평균자책점 2.62, 이마나가는 11승 4패 평균자책점 2.26, 미야기는 11승 8패 평균자책점 3.16, 2021년 일본시리즈에서 완봉승을 거뒀던 다카하시는 지난해 8승 2패 평균자책점 2.63을 기록한 선발 투수들이다.
이들은 단기전에서 일본 대표팀의 톱클래스 선발 4총사 오타니, 다르빗슈, 사사키, 야마모토 뒤에서 1+1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들은 딱 1경기씩 불펜으로 긴 이닝을 책임졌고, 8~9회 전문 불펜 요원에게 공을 넘겼다. 미야기는 투구수에 여유가 있어 경기 끝까지 던졌다.
구리야마 일본 감독은 "선발 다음에 나가는 2번째 투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언급하면서, 특히 한국전에서 잘 던진 이마나가에 대해 "지난해 11월부터 (2번째 투수 임무를) 준비했는데 그 역할을 정말 잘해줬다"고 칭찬했다.
반면 한국은 가장 중요한 호주전에서 선발 고영표(4⅓이닝 2실점) 다음에 2번째 투수 원태인으로 잘 이어갔다. 그런데 원태인(1⅓이닝 무실점)은 6회 2아웃을 잡고서 투구수 26개에서 교체됐다. 2번째 투수에게 선발처럼 긴 이닝을 맡기지 않고, 끊어갔다.
이강철 감독은 '1+1'이 아닌 끊어던지기로 불펜 계투로 마운드를 운영했다. 4-2로 앞선 7회는 베테랑 김광현과 양현종이 아닌 소형준을 올렸다. 소형준이 올라오자마자 사구와 안타로 주자 2명을 내보냈고, 희생번트로 1사 2,3루 화근을 남겼다. 다음 투수 김원중이 삼진을 잡고서 역전 스리런 홈런을 맞으면서 경기는 꼬여졌다.
당초 이 감독은 김광현을 승부처에서 흐름을 끌고 가거나, 흐름을 끊는 불펜 역할을 맡긴다고 했다. 그러나 반드시 이겨야 할 호주전 경기를 풀어가다 김광현을 다음날 일본전 선발로 빼뒀다. 당장 눈 앞의 경기에 올인하지 않고 뒷경기까지 생각한 것.
호주전에서 패배한 후 이 감독은 패인에 대해 "우리가 4-2로 역전했을 때 소형준 선택이라고 본다. 제구가 되고 아웃카운트 잡는 안정적인 투수라고 올렸는데, 거기서 3점 준 것이 흐름을 넘겨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과론이지만 원래 준비한 대로 김광현을 불펜으로 7회 투입해서 흐름을 확실하게 잡고 갔더라면. 2번째 투수 원태인의 공이 좋았는데, '1+1'으로 투구수 49개까지 던지게 했더라면. 일본처럼 '1+1'도 아니고, 불펜 올인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마운드 운영이었다. 호주전만 승리하면 일본에 지더라도 조 2위를 확보할 수 있고, 지난해부터 호주전 필승을 준비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일본전에서는 3회초 3점을 뽑았으나 3회말 곧바로 3-4 역전을 허용했다. 김광현이 2이닝 퍼펙트로 잘 던지다 3회 힘이 떨어지며 연속 볼넷을 허용했는데 교체 타이밍이 늦었다. 안타 2개를 맞고 2실점, 무사 2,3루에서 교체됐다. 전날 호주전에 이어 2번째 투수로 나온 원태인이 1사 만루에서 적시타를 맞고 3-4 역전을 허용했다. 일본에 완패한 후 이 감독은 "초반 승기를 잡았는데. 투수 교체가 늦어져서, 내가 투수 운영에 실패한 것 같다"고 자책했다.
어떻게 보면 고육지책으로 투수 운용에 한계도 있었다. 대표팀 15명의 투수들 중에서 몸 상태가 좋은 투수는 5~6명에 불과했다. 마무리 고우석이 대회 직전 목 근육통으로 출장하지 못하는 악재도 뼈아팠다. 젊은 투수들은 자신감을 잃고 자기 공을 던지지 못했다.
한정된 자원으로 4경기를 치러야 했기에 '1+1'은 애초에 힘든 구상이었다. 던지는 투수들만 계속 던졌다. 하지만 그랬기에, 더욱 호주전에 올인하는 투수 운영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일본전은 콜드게임을 당하더라도 포기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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