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대표팀의 메이저리거 김하성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홈런 부문 1위에 오르고도 웃지 못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침묵했고, 1라운드 탈락이 유력한 상황에서 뒤늦게 홈런포가 터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13일 일본 도쿄의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1라운드 B조 중국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22-2, 5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뒀다.
타선이 폭발했다. 중국 마운드를 무자비하게 두들겼다. 20안타로 22득점, 역대 WBC 한 경기 최다 점수 신기록과 역대 최다 점수 차 신기록까지 세웠다.
만루 홈런이 2방이나 터졌다. 박건우가 4회 2사 만루에서, 김하성이 5회 1사 만루에서 그랜드슬램을 쏘아올렸다. 김하성은 이번 대회 개인 3호 홈런을 터뜨리면서 WBC 홈런 부문 1위에 이름을 올렸다.
13일까지 김하성이 3홈런으로 1위, 박건우와 양의지를 비롯해 8명의 타자들이 2홈런으로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김하성은 전혀 기뻐할 수가 없었다.
대표팀에서 김하성은 한국인 어머니를 둔 미국인 토미 현수 에드먼과 함께 '유이한' 메이저리거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김하성은 수비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공격에서는 가장 중요한 호주전과 일본전에서 침묵했다.
9일 호주전 4타수 무안타 1볼넷, 10일 일본전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빅리거로서 뭔가 보여줄 것을 기대했으나 테이블세터 역할을 전혀 못했다. 결국 한국은 호주에 7-8 패배, 일본에 4-13 패배로 1라운드 탈락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김하성은 체코전에서 솔로 홈런 2방을 터뜨렸고, 중국전에서 만루 홈런을 쏘아올렸다. 뒤늦었다. 한국은 중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됐다. 김하성은 4경기에서 16타수 3안타 3홈런, 타율 1할8푼8리 6타점으로 대회를 마쳤다.
중국전이 끝나고 김하성은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많은 야구팬들께 죄송하다. 다음 대회 때는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김하성은 2017년 대회에 이어 두 번째 WBC에 출전했는데 또 1라운드 탈락으로 고개 숙였다.
김하성은 "부담이 안 됐다면 거짓말이다.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어서 많은 팬들이 응원해주셨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호주전, 일본전 패배와 부진을 거듭 사과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프리미어12에서 만난 호주보다 이번 대회의 호주가 짜임새 있고 준비를 잘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은 워낙 좋은 투수들이 많다. 결과는 경기를 뛴 선수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를 즐기지 못하고 국제대회 성적에 대한 부담에 짓눌렸다고 고백했다. 김하성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선수들 전체가 못 즐긴 건 사실이다.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고 털어놨다.
일본 대표팀은 대회를 앞두고 다르빗슈 유, 오타니 쇼헤이 메이저리거를 중심으로 단체 회식도 즐겼다. 김하성은 "다르빗슈의 SNS를 보며 알았다. 저희는 그런 게 없었다. 3년 만에 대표팀에 왔지만, 밖에 나가는 것이 부담 됐다. 저희들의 성적이 안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부담감을 다시 언급했다.
한편 대회를 마친 김하성은 곧바로 14일 미국으로 돌아가 소속팀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고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 출장한다. 빅리그 3년차인 올해는 주로 2루수로 뛸 전망. 김하성은 "늘 하던대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orang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