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와 비(非)애리조나 캠프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도쿄 참사'의 시발점은 미국 애리조나 캠프라고 봐야 할까.
공교롭게 대표팀 투수진 15명 중에서 이번 대회 잘 던진 투수들은 미국 애리조나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소속팀 스프링캠프를 보낸 후 대표팀 합숙 훈련에 참가한 선수들이다.
WBC에서 나름 잘 던진 투수는 롯데 박세웅과 김원중, 삼성 원태인, 두산의 곽빈과 정철원, NC의 이용찬, SSG 김광현 정도다.
김광현은 미국 합숙 훈련에 참가하면서 미국 플로리다주 SSG 캠프의 날씨가 좋았다며 SSG 캠프에서 많은 불펜 피칭도 소화하고 왔다고 했다.
원태인은 일본 오키나와 캠프, 곽빈과 정철원은 호주 시드니의 무더위에서 스프링캠프를 보내고 합류했다. 김원중은 롯데의 괌 캠프, 박세웅은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 상동 롯데 2군 구장에서 몸 만들기를 했다.
박세웅은 지난 10일 일본전에서 4-13으로 뒤진 7회말 2사 만루 위기에서 등판해 콜드게임 패배를 막아냈다. 12일 체코전 선발로 내정됐으나 콜드게임 위기가 되자 부랴부랴 몸을 풀고 올라와 대참사를 막았다. 그리고 체코전 선발로 나와 4이닝 퍼펙트 5회 2사까지 1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원태인은 공식 평가전부터 호주전, 일본전까지 4일 동안 3경기에 불펜으로 나와 호투했는데, 마지막 중국전 선발까지 떠맡았다. 김원중은 평가전 2경기와 호주, 일본, 체코와의 경기에 줄줄이 등판했다. 실투로 호주전에서 3점 홈런을 맞았지만, 불펜에서 '노예'였다.
반면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과 투손에서 소속팀 캠프 훈련을 한 LG 고우석, 정우영, 김윤식과 KT 소형준과 고영표, KIA 양현종과 이의리, NC 구창모는 부진했다. NC 이용찬 만이 제 몫을 했다.
일찌감치 호주전 선발로 내정됐던 고영표는 사구 2개를 허용했고, 결국 사구가 빌미가 돼 선취점을 내줬고, 홈런까지 맞아 초반 2실점으로 끌려갔다.
마무리 고우석은 지난 6일 오릭스와 공식 평가전에서 투구하다 목 근육통 부상으로 대회에서는 1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베테랑 양현종은 호주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3피안타 3실점으로 고개 숙였다.
일본전에서 젊은 좌완 영건들은 참담했다. 이의리는 4타자 상대해 3볼넷과 폭투, 김윤식은 3타자 상대해 2볼넷 1사구(3실점), 구창모는 3타자 상대하며 2피안타(2실점)으로 스트라이크조차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컨디션과 구위가 좋았기에 이강철 감독은 믿을만한 투수들만 계속 쓸 수 밖에 없었다. 이강철 감독은 13일 중국과 조별리그 최종전을 마친 후 "선수를 선발 할 때 내가 생각한대로 뽑아 왔는데 어긋나지 않았나 싶다. 확실한 선발을 정했어야 하는데, 내가 부족해서 정하지 못해서 성적이 안 나온 것 같다"고 자책했다.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치른 대표팀 합숙 때 이상 기온으로 날씨가 추워, 연습경기를 많이 하지 못했다. 투수들의 불펜 피칭이 특히 부족했다.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에 애리조나가 아닌 다른 따뜻한 곳에서 컨디션을 일찍 끌어올린 투수들의 컨디션이 좋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애리조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국길에는 비행기 기체 결함으로 36시간 고행의 귀국 여정을 겪었다. 투수들의 컨디션이 전반적으로 올라오지 않았고, 자신의 평소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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