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지 않으면 힘들어!"...얼어붙은 한국, '즐겜러'가 되지 못했다 [오!쎈 도쿄]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23.03.14 08: 35

한국 대표팀에 기적은 없었다. 앞만 바라보던 경주마는 목표를 잃고 방황하며 쓰러졌다. 즐기지 못한 자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한국의 WBC 여정은 마무리 됐다. 조별라운드 최종전을 치르기도 전에 한국은 8강 탈락이 확정됐다. 희박한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일은 없었다. 13일 낮 12시 열린 호주와 체코의 경기에서 호주가 8-3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한국은 8강 탈락이 확정됐다. 체코가 4실점하고 승리한 뒤 한국이 중국을 잡으면 한국, 체코, 호주가 모두 동률이 되고 한국이 최소실점률로 8강에 가는 희박한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었지만 가능성은 사라졌다.
한국은 첫 경기 호주전에만 오로지 포커스를 맞췄다. 이강철 감독을 비롯해서 선수단 모두 호주전만 바라봤다. 기자회견에서 모든 질문의 답은 결국 호주전 승리로 마무리 됐다. 그리고 '한국 야구 인기 부활'이라는 사명감까지 짊어졌다. 

한국 선수들이 패배를 아쉬워하고 있다. 2023.03.10 /spjj@osen.co.kr

그러나 호주전만 바라보고 한국 야구 인기를 책임지겠다는 선수단의 각오는 비장했다. 그런데 비장함을 경직됐다. 비장함은 부담감으로 연결됐고 표정과 행동에서 여유를 찾기 힘들었다. 이 분위기를 끊임없이 풀어주기 위해 코칭스태프가 부단하게 노력했다. 애리조나 전지훈련부터 오사카, 도쿄 등 훈련을 치를 때마다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7회말 한국 이강철 감독이 불펜과 통화를 하고 있다. 2023.03.10 /spjj@osen.co.kr
지난 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공식 훈련을 앞두고 김민호 주루코치는 "신나지 않으면 힘들다. 계속 얘기를 해라 너무 조용하다"라고 선수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밝은 분위기를 유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러한 주문은 계속됐다. 
부담에 사로잡힌 선수들의 표정은 플레이에서도 묻어났다. 호주전에서 3볼 1스트라이크의 유리한 카운트가 보이지 않은듯 방망이를 휘두르기 바빴고 모두 범타로 연결됐다. 강백호의 치명적인 '세리머니 주루사'로 분위기는 더욱 경직됐다. 호주의 베이스 커버 실수가 드러났을 때도 이를 확인하지 않은 박해민이 홈을 밟지 못하기도 했다. 결국 호주전 7-8의 충격패로 8강 여전에 암운이 드리우고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호주와 체코 모두 경기장 곳곳에서 미소가 만연했다. 지금 이 무대 자체를 즐기겠다는 자세가 엿보였다. '세계 정상 탈환'이라는 거대한 부담을 짊어졌던 일본도 분위기 만큼은 활기찼고 단합력을 과시했다. 투수조 최고참 김광현은 다르빗슈 주재로 일본 선수단이 회식을 했다는 얘기에 "8강 이상 가면 회식을 하는 걸로 하겠다. 시작도 하기 전에 회식하면 또 얘기 나올 수 있다. 조심스럽다. 눈치 보는 게 일상이다"라고 말했다. 농담으로 웃었지만 부담에 사로잡혀 얼어붙은 선수단을 대변하는, 자조 섞인 말이기도 했다. 
김하성 역시도 "저도 SNS를 보다가 일본 대표팀 회식을 알게 됐다. 근데 한국은 사실 그런 게 없었다. 밖에 나가는 것도 부담이 있었다. 최근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현실을 설명했다.
하나의 목표에만 매몰되자 옆이 보이지 않았고 그 목표 달성이 힘들어지자 웃음기를 잃고 좌절했다. 즐기지 못한 한국 야구는 또 한 번 세계무대와 멀어지고 팬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과 직면했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13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4차전 중국과의 경기를 가졌다.1회초 1사 3루에서 한국 이정후의 중전 적시타 때 홈을 밟은 3루주자 박해민이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2023.03.13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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