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투수 보호 지침에 미국 야구 대표팀을 이끄는 마크 데로사(48) 감독의 머리가 아프다. 충격의 패배로 비난을 받고 있는 데로사 감독도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데로사 감독이 이끄는 미국 야구 대표팀은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C조 두 번째 경기 멕시코전에서 5-11 완패를 당했다. 30명 전원이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드림팀의 충격적인 첫 패였다.
투수들이 홈런 2개 포함 장단 15안타를 맞고 크게 무너졌다. 11실점은 지난 2009년 WBC 2라운드 푸에르토리코전(1-11) 이후 미국 대표팀의 한 경기 최다 실점 타이 기록으로 두 번째 큰 점수차 패배였다. 선발투수 닉 마르티네스가 2⅔이닝 5피안타(1피홈런) 1볼넷 2탈삼진 3실점 조기 강판된 가운데 3번째 투수 브래디 싱어가 2이닝 4피안타(1피홈런) 1볼넷 2탈삼진 4실점으로 난타당한 게 뼈아팠다.
4회 이닝 시작과 함께 투입된 싱어는 1사 후 안타와 폭투, 2루타, 볼넷으로 주자를 쌓은 뒤 조이 메네스에게 스리런 홈런을 맞아 순식간에 4실점했다. 스코어가 1-7로 벌어지며 멕시코 쪽으로 일찌감치 승기가 넘어갔다. 싱어가 흔들리는 데도 교체를 하지 않은 데로사 감독의 경기 운영을 두고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그런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만한 이유가 또 있었다. ‘ESPN’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데로사 감독은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투수들을 보호하고, 정규시즌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이닝 관리를 해야 한다. 구단들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멀티 이닝으로) 쓸 수 있는 투수가 제한돼 있어 몇몇 투수들로 계속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경기도 이겨야 하고, 투수 관리에도 신경써야 한다는 점에서 힘들다. 하지만 난 선수들의 빅리그 경력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데로사 감독이 선수 이름을 따로 거명하진 않았지만 이날 선발 마르티네스를 제외하고 구원 7명 중 멀티이닝을 소화한 투수는 싱어뿐이었다. 다니엘 바드(⅔이닝 4실점)와 나머지 켄달 그레이브맨(⅓이닝), 아담 오타비노(1이닝), 애런 루프(1이닝), 데빈 윌리엄스(⅓이닝), 라이언 프레슬리(1이닝) 등 무실점 투수들은 1이닝 이하로만 던졌다. 그레이브맨, 윌리엄스는 주자 있는 상황을 정리한 뒤 다음 이닝에 올라오지 않았다.
구원투수들의 연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데로사 감독은 “투구수에 따른 규칙이 있다. 구단들을 존중하는 한 오늘 밤에도 이와 관련해 몇 가지 논의가 있을 것이다”며 14일 캐나다전에 쓸 수 있는 투수도 제한돼 있음을 암시했다. 정규시즌을 앞둔 구단들로선 투수 보호가 당연하지만 당장 경기를 치러야 하는 현장으로선 난감한 일. 투수 운용에 큰 제약이 따르는 데로사 감독 입장에서는 지나친 간섭으로 느낄 만하다.
지난 12일 첫 경기 영국전에 6-2로 승리했지만 이날 멕시코전 11실점으로 조별리그 1승1패가 된 미국은 실점률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14일 캐나다전, 16일 콜롬비아전에서 최소 실점으로 승리한 뒤 나머지 팀들의 경기 결과를 봐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1라운드 조기 탈락 굴욕을 당할 수도 있다. 남은 2경기에서도 투수들을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데로사 감독의 머리가 무척 아프게 됐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