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의 1라운드 조기 탈락. 한국아구대표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실패를 외국인 감독은 어떻게 바라볼까. 올해로 한국에서 3년째를 맞이한 카를로스 수베로(51) 한화 감독은 한국 야구의 오래된 풍토를 지적하면서 유익한 제안도 한 가지 했다.
수베로 감독은 시범경기 첫 날이었던 지난 13일 대전 KIA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WBC 관련한 이야기에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이 일본과 함께 선전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상 밖 일이 벌어졌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항상 아쉬운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 역시 야구의 일부”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어 수베로 감독은 “한국에 온 첫 날부터 바뀌지 않은 생각이 하나 있다. 한국 선수들이 상자 안에서만 자신의 기량을 뽐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에게 ‘상식적인 야구만 하자 말자’고 항상 장려하곤 한다. 어렸을 때 배워온 포구 자세로만 하려다 보니 더블 플레이를 놓치기도 한다”고 하나의 예를 들었다.
계속해서 수베로 감독은 “다이빙 캐치를 하다 공을 놓쳐 3실점을 해도 다음에 슈퍼 세이브를 할 수도 있는 게 야구다. 선수들에게도 ‘틀에 박힌 상자를 찢자’는 말을 한다. 보수적인 게 좋을 때도 있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 하다 보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전통적인 야구도 좋지만 그 틀에서 벗어나야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마이너리그 감독으로 15년, 메이저리그 코치로 4년을 지내며 단계별 레벨을 모두 경험한 나아가 수베로 감독은 “미국에선 선수가 실패를 해도 계속 격려하고 기회를 준다. 선수 육성을 위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계속 심어준다”며 성장 과정을 중시하는 미국 야구 문화도 이야기했다.
미국은 루키리그부터 로우 싱글A, 하이 싱글A, 더블A, 트리플A까지 메이저리그 진출 전까지 5단계 레벨이 있다. 연령대마다 단계별로 육성 코스를 밟는 반면 우리나라는 퓨처스리그가 유일한 공식 마이너리그로 3군에 해당하는 잔류군은 비정기적 연습경기만 치른다. 실질적인 마이너리그가 1개뿐이다 보니 목적이 다른 베테랑과 신인급 선수들이 한 데 뒤엉켜 오롯이 육성 기능만 하기에 어려운 구조다.
수베로 감독은 “신인급 선수들이 2군에서도 28~30세 정도 되는 선수들을 상대한다. 이들은 노련미가 있고, 어린 선수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안다.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신인급 선수들이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그동안 쌓아온 자신감이 무너지거나 지금까지 해온 과정에서 본인의 신념이 흔들릴 수 있다”며 “이상적으로는 2~3개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마이너리그 시스템 확대를 제안했다.
좋은 재능을 지닌 유망주들도 프로에서 당장 통하긴 쉽지 않다. 1군은 물론 2군에서도 마찬가지. 시작부터 찾아온 실패 경험이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게 수베로 감독의 지적이다. 미국처럼 연령대별로 마이너리그 시스템이 있으면 좋지만 예산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원호 한화 퓨처스 감독은 “우리나라는 마이너리그가 하나밖에 없다는 게 가장 아쉽다. 그러다 보니 경기에 뛰는 선수 인원수가 제한돼 있다. 유망주도, 나이 먹은 선수도 다 섞여 뛰어야 한다. 정말 안타깝게도 뛸 기회가 없어 연습만 하다 팀을 나가게 되는 선수들도 많다. 기본기 훈련을 많이 해도 실전에서 뛸 기회가 얼마 없으니 선수가 성장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개인적으로 퓨처스리그는 나이 제한을 두고 잔류군 선수들로 또 하나의 3군 리그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퓨처스리그가 3연전을 할 때 잔류군이 2연전으로 일주일에 4경기만 하더라도 팀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