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족했던 투수 15명이라고 생각했다. 이강철 감독의 대표팀 마운드 구상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기대했던 투수진은 컨디션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면서 이강철 감독의 마운드 구상은 모두 꼬였다. 김원중과 정철원을 모든 경기에 내보내야 했던 이강철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 책임이 모두 이강철 감독에게만 있는 것일까. 제대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한 선수들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한국은 13일,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됐다. 2013년, 2017년에 이어 3개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호주가 체코를 8-3으로 잡아내며 조2위로 8강에 진출했다.
한국은 첫 경기 난적이었지만 반드시 잡아야 했던 호주를 상대로 7-8로 패했다. 호주전에서 패하면서 대회 구상은 완전히 꼬여보렸다. 뒤이어 한일전이 있었지만 한일전에서 투수 10명을 쏟아붓고도 13실점을 하는 대참사와 마주했다. 결국 1라운드 탈락의 그림자가 짙어졌고 마지막 경우의 수였던 체코가 호주를 4실점 이상 하면서 승리하는 상황도 나오지 않았다. 최종전 중국전 결과와 관계 없이 한국은 탈락이 확정됐다.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이강철 감독의 투수진 운영에 대한 비판은 일단 피할 수 없다. 김원중과 정철원은 지난 6~7일 오사카에서 열린 오릭스, 한신과의 공식 평가전부터 시작해서 대회 본선 3경기(9~10일, 12일)까지. 5경기 모두 등판한 투수였다. 7일 동안 5경기에 등판하며 ‘단기 혹사’ 우려를 낳았다.
다른 투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고영표는 9일 호주전 4⅔이닝 49구를 던진 뒤 이틀 휴식을 취하고 12일 체코전에 구원 등판했다. 투구수 제한 규정을 피했다. 박세웅 역시 10일 한일전 10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해 1⅓이닝 11구를 던지고 하루 휴식 후 12일 체코전 선발 등판해 4⅔이닝 59구 1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 투혼을 보였다. 원태인도 오사카에서 열린 한신과의 평가전(27구), 9일 호주전(26구), 10일 한일전(29구)까지 4일 간 총 82구를 던진 뒤 13일 중국전 선발 등판이 예고됐다.
한국의 조별라운드 탈락에도 불구하고 투수들의 투혼은 성적과 별개로 박수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부 투수들만 투혼을 강요 받았고 이강철 감독이 제한된 선택지만 들고 투수 운영을 했어야 했던 이유는 결국 다른 투수들이 대회에 맞춰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리조나의 이상기후, 잦은 이동은 모든 선수단에게 해당된 악재였다. 핑계와 변명을 댄다면 태극마크의 자격이 없다.
김원중 정철원 박세웅 고영표 원태인 등 자주 등판한 투수들과 불펜으로 꾸준히 역할을 해준 이용찬과 곽빈, 그리고 한일전 선발로 혼신의 힘을 다한 김광현까지. 8명의 투수들은 중국전 전까지 팀이 소화한 26이닝 중 24⅓이닝을 던졌다. 박세웅(6이닝) 고영표(5이닝) 원태인(3⅓이닝) 이용찬(3이닝) 곽빈(2이닝) 김광현(2이닝) 김원중(1⅔이닝) 정철원(1⅓이닝) 순으로 많이 던졌다. 결국 나머니 7명의 투수가 1⅔이닝 밖에 소화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고우석은 오사카 평가전에서 담 증세로 1라운드 등판 자체가 힘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정우영(⅔이닝) 구창모(⅓이닝) 이의리(⅓이닝) 소형준(⅓이닝) 은 오사카 평가전부터 미심쩍은 등판 내용을 보여줬고 벤치의 신뢰를 잃었다. 김윤식 역시도 컨디션이 늦게 올라온 탓인지 1경기 등판했지만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했다. 매 경기 총력전을 펼쳐야 하는 벤치 입장에서는 이들을 섣불리 기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강철 감독도 머리를 싸맨 끝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 국제대회 단기전을 이겨낼 심신이 되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이들을 가용 자원 1순위에서 배제했다. 정우영 김윤식 구창모 이의리 등 일본전 막판에 등판했던 투수들 모두 되돌아보면 승부처 상황에 쓰기 힘든 컨디션의 투수들이었다. 4-6으로 다소 팽팽했던 경기가 한 순간에 기운 것도 이 시점이었다.
무엇보다 김광현과 함께 투수조 최고참 역할을 해야 했던 양현종은 호주전 아웃카운트 1개도 잡지 못한 채 충격의 3점포를 얻어 맞은 뒤 아예 자취를 감췄다. 최고참 베테랑의 컨디션 조절 실패는 충격이었고 이강철 감독의 계산도 어긋나게 했다.
모두 한국 야구의 현재와 미래라고 불렸던 투수들이었지만 대표팀에서 실패를 맛봤다. 대표팀 이강철 감독은 선수들에게 ‘알아서’ 몸 관리를 잘 해서 오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사령탑의 믿음에 실수든 시행착오든 선수들은 부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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