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는 아닌데...
한국 야구대표팀이 WBC 세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위기에 몰렸다. 자력으로 1라운드 돌파는 못한다. 13일 낮 12시 호주와 체코 경기가 운명을 쥐고 있다. 조건은 단 하나. 무조건 체코가 이겨야 한다. 그리고 4점 이상을 주어야 한다. 또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한국야구의 초라한 현실이다.
어려운 경기를 펼친 이유는 타격 보다는 마운드에 있다. 호주전 8실점, 일본전 13실점, 약체 체코에게도 3점을 허용했다. 3경기에서 24점이다. 이렇게 많은 실점을 하고도 8강행 티켓을 바라보기는 어렵다. 일본은 4경기에서 8실점, 팀평균자책점 1.50에 불과하다. 한국은 8.31이다. 이것이 한일야구의 격차이다.
대표팀의 기둥이었던 베테랑 김광현과 양현종의 든든함이 모자랐다. 박세웅과 원태인이 분전하고 있지만 젊은투수들도 강렬한 공을 던지지 못했다. 마무리 고우석의 부상 개점 휴업도 투수 운용을 어렵게 했다. 착착 돌아가야 할 마운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투수들이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투수들과 달리 100% 빌드업을 못한 듯한 구위를 보여주었다. 스피드와 볼의 힘, 변화구 궤적이 아니었다. 시즌 중에서 던졌던 볼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상황에서 밀린 이유였다. 구위가 안되니 힘이 들어가고 제구력도 실종되었다.
애리조나 투손 전지훈련의 날씨가 궃은 이유도 꼽히고 있다. 선수들은 2월15일 소집되었으나 투수들이 제대로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춥고 강풍에 눈까지 내리는 날씨에서는 투수들이 구위를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 연습경기도 취소되기도 했다. 2월초는 소속팀에서는 시차적응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캠프를 마친 후 기체결함으로 귀국이 지연됐고 한국에 도착해서는 또 시차 적응을 해야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투수들의 빌드업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우석의 부상도 갑작스럽게 실전에서 구위를 끌어올린 이유였다. 5년 만에 WBC가 열리면서 경험이 부족한 젊은 투수들인지라 3월 초에 100% 만드는 일도 익숙치 않다. 에이스급 투수층이 두텁지 못한 한국야구의 약점이 드러났다.
결국 대회에 들어서자 호주타자들의 힘 좋은 스윙을 견디지 못하고 밋밋한 공을 던지다 당했다. 일본전에서는 만원관중이 들어찬 도쿄돔의 압도적 분위기, 실투를 놓치지 않은 일본타자들의 정교한 스윙에 멘탈까지 붕괴되는 상황들이 벌어졌다. 일본선수들은 미야자키 캠프에서 충분한 숙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시차가 적고 날씨도 좋았던 일본 또는 괌, 호주 등지에서 캠프를 진행했다면 투수들은 또 달라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한국 투수들이 우물안 KBO리그에서 안주했고 좀 더 치열한 자기 계발을 못한 것은 지적받을 일이다. 한국야구의 커다란 숙제이다. 그래도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들을 뽑아놓고 준비과정에서 빌드업을 못한 환경도 악재였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