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투수가 단기간에 불펜 투수로 전환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그런데 또 다시 선발 투수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믿을맨’으로서 호출을 받은 것이지만 가혹한 상황에서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한국이 만약 기적적으로 8강에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문제다.
한국은 13일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운명이 결정된다. 1라운드 탈락 아니면 8강 진출인데 한국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한국은 13일 중국과 오후 7시부터 최종전을 치르지만 중국전에 낮 12시부터 열리는 체코-호주전 결과에 한국의 운명이 달렸다. 호주가 이기면 3승1패를 기록하면서 조2위로 8강 진출이 확정이다. 체코가 승리하게 되면 최소 4점 이상을 주고 받으면서 승리해야 한다. 단 이것도 9회 정규이닝에서 승부가 난다는 가정 하에 계산된 한국의 8강 진출 확률이다.
자력 8강 진출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지만 중국과의 최종전에서 그동안 대회 마운드를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유종의 미라도 거두는 그림이 나오는 듯 했다. 그런데 한국은 그동안 중용 받지 않았던 투수들이 아니라 이번 대회 핵심 믿을맨 역할을 했던 원태인을 또 다시 선발 투수로 예고했다.
원태인은 지난 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한신과의 평가전부터 지난 10일 열린 한일전까지. 짧은 기간 부담감과 함께 밀도 있게 던졌다. 7일 한신전 2이닝 27구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어쩌면 이 등판이 원태인 고난의 행군 시작이었다.
하루 휴식을 취하고 9일 호주와의 대회 첫 경기에 1⅓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투구수는 26개였다. 이튿날인 10일 한일전에서도 2이닝 29구 2피안타(1피홈런) 1탈삼진 1볼넷 1실점을 기록했다. 4일 동안 무려 82구를 던졌다.
비록 11일 휴식일이었고 12일 체코전에 나오지 않았고 7일로 기간을 늘려도 적지 않은 공을 던진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선발을 준비해야 하는 선수인데 불펜으로 전환해서 던지고 다시 선발로 나서는 실정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위해 던진다고는 하지만 단기 혹사 우려는 가시지 않는 실정이다.
원태인의 역할이 커진 것, 그리고 김원중, 정철원이 자주 마운드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 투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고우석은 평가전에서 목에 담 증세가 생기면서 1라운드 등판이 불가능해졌다. 정우영, 구창모, 이의리, 소형준 등 젊은 선수들은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벤치에서 승부처 상황 투입을 주저하게 됐다. 신뢰를 잃었다.
컨디션 관리를 잘했고 신뢰를 얻었지만 짧은 기간 많은 공을 던지는 후폭풍이 찾아왔다. 결국 지난 일주일 동안 82개의 공을 던졌지만 중국전 선발 등판으로 최소 100개 이상의 공을 일주일 동안 던지게 되는 셈이다.
전력을 다해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최대한 좋은 투수를 극대화 시켜서 활용해야 하는 단기전이자 국제대회다. 하지만 다른 투수들이 개점 휴업 상태로 보탬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홀로 부담을 떠안는 게 야속하고 가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