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야구계는 걱정어린 시선이었다. 과연 투수진이 버텨낼 수 있을까. 비단 세대교체를 주장했던 빅리거 출신 추신수(SSG) 뿐아니라 오랜 동안 야구계에 몸담았던 인사들은 '한국야구 국가대표팀의 마운드가 너무 약하다'는 인식이었다. 그야말로 ‘언제적 김광현이고 양현종이냐’는 의견들이 많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나름 착실하게 준비했다는 202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1라운드 B조 예선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일본을 넘어 미국까지 가자는 목표는 첫 경기 호주전서 7-8로 패해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두 번째 경기인 숙적 일본전서 4-13으로 완패하며 무참하게 깨졌다.
박살난 마운드가 패배의 원흉이었다. 타선도 기대에 못미쳤지만 투수진은 처참했다. 특히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했던 어린 투수들이 문제였다. 경험이 일천한 어린 투수들은 일본전 마운드에서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해 사사구를 남발하며 대패의 빌미를 제공했다.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공도 커맨드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대회 시작전 만난 야구계 한 인사는 “우리 프로야구에 전반적으로 제대로 던지는 투수가 없다. 국제대회서 실력을 발휘할 위협적인 투수들이 안보인다. 대표팀 뿐만아니라 전체 프로야구계에 문제다. 구속은 빨라졌지만 컨트롤이 안된다”라며 국내 투수진이 예전에 비해 훨씬 약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인사는 “KBO와 10개구단이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 특급 투수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며 “일명 ‘선동열 투수학교’라도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한다. 투수 육성의 대가인 선동열 전감독같은 분들이 나서서 어린 유망주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전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나서서 각종목의 유망주를 조기발굴하고 집중 육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처럼은 아니지만 중고교부터 어린 선수들 중에서 투수 재능이 있는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제주도나 남해안 같은 날씨 여건이 좋은 지역에 KBO차원의 ‘투수학교’를 설립해야 한다. 그리고 방학기간, 비시즌을 활용해 학생선수나 프로 유망주들을 집중 조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 KBO의 넥스트 레벨 프로그램을 확대개편해야 한다. 선동열 전감독같은 대투수 출신으로 투수조련에 있어서 검증받은 지도자가 체계적으로 유망주들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선동열 전감독은 한국야구는 물론 일본야구까지 평정했던 최고의 투수레전드이다.
가뜩이나 저출산 시대로 선수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특급 투수들을 배출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야구가 WBC 부진의 아픔을 거울삼아 다시 일어나려면 투수 레전드들이 후배 양성에 나설 수 있는 무대 마련이 시급하다. 최고의 시설과 검증된 지도자, 그리고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으로 한국야구가 재도약할 수 있는 특급 투수진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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