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용감했던 태극전사들은 역사에 불과했을까?
이승엽 두산 감독은 한국이 지난 9일 WBC대회 첫 상대 호주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하자 위로가 담긴 응원을 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호주에게 패했지만 일본에게 이겼다는 것이었다. 8강 진출을 위해 10일 반드시 일본을 이겨야하는 상황에서 선배들의 업적을 되새기며 용기가 갖자는 주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리그를 중단하고 드림팀을 결성한 한국은 예선리그에서 이탈리아전 첫 승후 호주에 이어 쿠바, 미국에게 잇따라 패해 4강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카지노 출입 사건까지 터져 대표팀이 뒤숭숭했다. 김기태 주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대표팀은 네덜란드에 이어 최대 고비처였던 일본을 꺾었다.
그 기세를 몰아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잡고 4강에 진출했다. 4강전에서 미국에 패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또 다시 일본도 잡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승엽은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버틴 일본전에서 귀중한 결승타를 치면서 에이스 구대성과 함께 동메달을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애석하게도 이승엽 감독이 소환한 시드니 쾌거는 재현되지 않았다. 한국타선은 일본이 자랑하는 메이저리그 95승 투수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3회 양의지의 투런홈런, 이정후의 적시타를 앞세워 3점을 먼저 뽑았다. 타선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이승엽 감독의 응원이 빛을 발하는 듯 햇다.
그러나 2회까지 5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선발 김광현이 3회 무너졌다. 맏형이 내려가면서 마운드는 속절없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박세웅을 제외하고 마운드에 오른 투수들은 모두 실점했다. 점수차는 어느새 4-13까지 벌어졌다. 굴욕의 콜드패 위기까지 몰렸다. 어쩔 수 없는 기량의 차이였다.
투수들이 압박감에 시달렸다. 4만6000명이 운집한 도쿄돔의 일방적인 응원, 한일전이라는 극심한 부담감에 휩싸였다.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던지지 못해 9개의 사사구를 허용했다. 위기에서 힘이 들어간 탓에 낮은 제구를 못했고 결국 장타와 적시타로 이어졌다. 분명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멸했다는 표현이 더 맞다.
예전같으면 일본선수들이 한일전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이제는 한국선수들이 더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시드니올림픽을 비롯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역대 WBC대회, 2015 프리미어 12 대회에서 투지와 열정으로 한일전에서 승전보를 전했던 태극전사는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몸에 맞은 일본선수들은 투수들을 잔뜩 노려보며 자극하는데도 맞대응도 없었다. 결국 2020 도쿄올림픽에 이어 또 도쿄 참사를 겪었다.
일본의 WBC 대표팀은 역대 최강의 조합이었다. 일본투수들은 분명 한 수 위였다. 갈수록 실력차는 커지고 있다. 드림팀 기준으로 2015 프리미어 준결승 승리 이후 4연패이다. 한국야구에게 일본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젊은투수들의 약진이 절실해졌다. 이번에 세계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을 절감했다. 뼈아픈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발전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지는 것도 공부이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