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기회를 많은 후배가 받길 바라는 마음, 어쩌면 SSG 랜더스 최선임 외야수 추신수(41)의 말이 맞다. 한국 야구가 일본에 무참히 무너진 뒤 그가 한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생겼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0일 오후 7시 일본 도쿄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1라운드 일본과 B조 2차전에서 4-13으로 처참하게 당했다. 투, 타 양면에서 도저히 일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선발 등판한 김광현이 2회까지는 호투하다가 3회 들어 무너졌다. 2이닝 4실점이 그의 기록이다. 이후 한국 마운드는 줄줄이 무너졌다.
타선은 일본 마운드 공략에 실패했다. 일본 선발 다르빗슈 유 상대로는 3회초 양의지의 2점 홈런, 이정후의 적시타로 리드를 잡았지만 추가 득점이 쉽지 않았다.
역전을 당하고 끌려가다가 6회초 박건우의 솔로 홈런이 터졌으나 추격은 거기까지였다.
베테랑 타자 박병호가 2타수 무안타, 김현수가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4, 5번 중심에 배치된 그들의 방망이는 식어 있었다. 한국 야구의 미래, 이정후가 3번에서 멀티히트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그의 뒤에서 후속타는 없었다.
특히 김현수는 지난 9일 대회 1라운드 첫 경기였던 호주전에서도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2경기에서 7타수 무안타로 중심타자 노릇을 전혀 해내지 못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를 별렀다. 지난 두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2013년, 2017년의 수모를 씻고 성적을 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국제 대회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필요해 보였다.
결과론이지만 호주전에서 양현종이 무너졌고, 일본전에서는 김광현도 고전했다. 베테랑 타자들도 이렇다 할 야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몸값은 잔뜩 부풀었는데, 한국야구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한탄이 절로 나올법 하다.
믿었던 선수들이 성적을 내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보다 많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어땠을까.
한국은 이제 자력으로 다음 라운드 진출이 불가능해졌다. 그간 국제 무대 중심에 있던 선수들은 더이상 승리 보증 수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베테랑 다수가 좋지 않으니 분위기만 더 무겁게 느껴지는 대회다. 패기가 보이지 않았다. 헬맷이 부서지는 위험 속에서 도루를 했던 이용규가 그리울 정도다.
추신수는 지난 1월 중순 미국 댈러스 지역의 한인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일본 같은 경우 국제대회를 하면 새로운 얼굴들이 많다. 우리는 김현수를 비롯해 김광현, 양현종 등 베테랑이 많다. 충분히 실력있는 선수들이지만, 나라면 당장 성적 보다는 미래를 봤을 것이다. 새로운 선수를 뽑았어야 했다. 언제까지 김광현, 양현종이냐. 문동주가 제구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지금 그런 투수가 없다. 안우진도 마찬가지다.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는 게 한국 야구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안우진 경우 일단 논외로 두자. ‘학폭’ 논란에 있는 선수를 언급한 점은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자는 의미로 김현수, 김광현, 양현종 등을 언급한 것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WBC는 4년에 한번 열린다. 올림픽은 야구를 하지 않는 나라에서 개최될 경우 정식 종목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아시안게임은 WBC 대회처럼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상대해 볼 일이 적다.
즉 4년에 한번 꼴로 젊은 선수들에게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굳이 예를 들자면 김현수는 중심타자로 전혀 제구실을 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김현수 대신 더 젊은 선수가 도쿄돔에서 ‘투타 겸업’ 스타로 세계 야구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오타니 쇼헤이같은 선수의 플레이를 원정 덕아웃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 될까.
추신수는 김광현, 양현종, 김현수의 실력이 없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다만 태극마크의 무게감, 책임감을 한 명이라도 더 나이 젊은 선수가 느껴보길 바란 것이었다.
/knightjis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