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냐오냐’ 했던 우리들만의 유망주였다. 한국 투수진의 세대교체 기수라고 여겨졌던 젊은 영건들은 세계 무대에서 주눅들고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숙적이라고 했던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한 수준이었다.
한국 대표팀은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B조 일본과의 경기에서 3-14로 대패를 당했다. 숙적이라고 하지만 일본과 현격한 격차를 재확인 하면서 한국 야구의 현실이 이 정도라고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 됐다.
한국은 15년 전부터 한일전 중책을 맡겼던 김광현을 다시 한 번 한일전 선발 투수로 내보냈다. 김광현은 혼신의 힘으로 집중해서 오타니 쇼헤이를 삼진 처리하는 등 2회까지 삼진 5개를 뽑아내며 역투했다. 타선도 3회초 양의지의 투런포 이정후의 적시타 등으로 3점을 뽑아내며 기선을 제압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후가 문제였다. 김광현은 신중하게 승부를 펼치다가 위기를 자초했다.
3점의 리드는 금방 사라졌고 이후 끌려가는 양상으로 이어지면서 경기는 급속도로 일본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 투수진의 미래라고 했던 선수들은 일본 타자들을 상대로 쩔쩔 맸다. 패기도 보여주지 못하고 그대로 움츠러들었다.
김광현(2이닝 4실점) 이후 원태인(2이닝 1실점) 곽빈(⅔이닝 1실점) 정철원(⅓이닝 1실점) 김윤식(0이닝 3실점) 김원중(⅓이닝 1실점) 정우영(⅔이닝 무실점) 구창모(⅓이닝 2실점) 이의리(⅓이닝 무실점 3볼넷) 박세웅(1⅓이닝 무실점)이 차례대로 던졌다. 이들은 13피안타 4사구 9개를 헌납하면서 간신히 콜드게임을 면하는 수준이었다. 박세웅이 등판하지 않았다면 콜드게임은 정해진 수순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도쿄돔을 찾은 일본 취재진도 7회부터 콜드게임에 대한 예상을 하면서 기사 마감을 준비하기도 했다.
콜드게임이라는 치욕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어도 비극이자 참사라는 표현을 피할 수는 없다. 앞서 9일 열린 호주를 상대로도 투수들이 연거푸 무너지면서 7-8로 패한 것까지 포함하면 비극적인 결말과 파급력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강철호’에 뽑힌 대표팀 투수진의 나이는 평균 27.1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24.6세), 2000년 시드니 올림픽(26.3세)에 이어 역대 3번째로 젊은 투수진으로 꾸려졌다. 혹자들은 대표팀의 세대교체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번 대표팀은 그 어느 때보다 신구조화가 이루어지면서 세대교체까지 감안한 대표팀이라고 평가 받았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20대 영건들이 모두 포함됐기에 이들의 패기에 기대를 걸었고 이번 대회를 통한 경험이 향후 한국 야구를 이끌어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자 이들의 경쟁력은 KBO리그 내에서만 국한되어 있었다. 준비 과정, 컨디션 조절에 대한 핑계가 있을 수 있지만 일찌감치 예고된 대회 스케줄에 맞추지 못한 것은 투수진의 난조에 핑계가 될 수 없다. 어쩌면 이들의 경쟁력과 한계가 이 정도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정도로 영건들의 등판 기록과 내용은 처참했다. 한일전의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게 실력이었다.
더욱이 이날 일본 투수진과 비교해보면 더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한국전 선발 투수로 투수조 고참인 다르빗슈 유를 선발 투수로 내세웠다. 다르빗슈가 3이닝 3실점으로 무너졌지만 뒤이어 올라온 만 30세의 좌완 이마나가 쇼타(3이닝 1실점), 만 25세 우다가와 유키(1이닝 무실점), 만 28세 마츠이 유키(1이닝 무실점), 만 21세의 다카하시 히로토(1이닝 무실점) 등은 모두 150km 이상의 공을 펑펑 뿌리면서 한국 타자들을 더욱 압도했다.
중국전 선발 투수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해 두 번째 투수 토고 쇼세이, 유아사 아츠키, 이토 히로미도 마찬가지로 150km는 쉽게 뿌리며 압도했다.
일본의 영건들의 기량과 성장 속도와 비교해보면 KBO리그의 유망주들이 얼마나 초라했는지 이번에서야 할 수 있게 됐다. 우리들만의 유망주였고 우물 안 개구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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