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전문가의 명성이 아쉽다. 첫 국제대회 사령탑으로 나선 이강철 대표팀 감독이 연이어 투수 운영 실패로 자책했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1라운드 B조 조별리그에서 마운드 붕괴로 2경기 연속 패배했다. 지난 9일 호주에 7-8로 역전패했고, 10일에는 '숙적' 일본에 자칫 콜드게임 수모를 당할 뻔 하며 4-13으로 대패 당했다.
2경기 17이닝 21실점으로 마운드가 붕괴됐다. 무엇보다 통산 152승을 기록하고 '투수 전문가'로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이강철 감독이 투수 운영에서 아쉬움을 되풀이했다. KT 위즈 사령탑으로 팀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단기전 투수 운영에서도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 국제대회에서 연이어 패착을 자인했다.
이강철 감독은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 기자회견에서 "초반 승기를 잡았는데. 투수 교체가 늦어져서, 내가 투수 운영에 실패한 것 같다"고 경기 소감을 말했다.
한국은 일본 선발 다르빗슈 유 상대로 3회 강백호의 2루타에 이어 양의지의 투런 홈런으로 선제점을 뽑고, 2사 후 이정후의 1타점 적시타까지 터져 3-0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선발 김광현이 2회까지 삼진 5개를 잡아내며 퍼펙트 피칭을 하다가 3회 3점 리드를 안고 마운드에 올라서는 제구 난조를 보였다. 8번과 9번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했다.
그리곤 1번 메이저리거 눗바 상대였다. 김광현이 계속 던졌고, 눗바에게 1타점 적시타, 곤도에게 1타점 중월 2루타를 맞았다. 3-2로 쫓긴 무사 2,3루에서 원태인으로 교체했다. 원태인은 오타니를 고의4구로 내보내 만루 작전을 펼쳤고, 삼진으로 아웃카운트를 잡고서 메이저리거 요시다에게 2타점 역전 적시타를 허용했다.
김광현이 연속 볼넷으로 흔들릴 때, 늦어도 1점을 내줬을 때 투수 교체를 했어야 하는 아쉬움. 이 감독은 "3회가 승부처였다. 실점을 하지 않으면 좋은 기회가 올 수 있는데 승기를 넘겨줬다"며 "투수 교체가 늦었다"고 자책했다.
박건우의 솔로 홈런으로 4-6으로 추격한 6회, 정철원이 선두타자에 3루타를 맞자 좌완 김윤식을 올렸다. 볼넷-사구-밀어내기 볼넷으로 최악의 결과였다. 대표팀 젊은 좌완 김윤식의 부진에 이어, 7회에는 좌완 구창모가 등판해 1사 1,2루 위기에서 강판됐다. 이어 나온 이의리도 볼넷-폭투(실점)-볼넷-삼진-밀어내기 볼넷으로 최악의 피칭을 했다.
승부처 3회는 투수 교체가 늦었지만, 6회와 7회는 결과적으로 투수 선택이 잘못됐다. 4-13으로 점수차가 벌어져 콜드게임 직전에 올라온 박세웅이 2사 만루 위기를 막는 등 1⅓이닝 퍼펙트로 잘 막았다. 평가전에서 2이닝 퍼펙트로 좋았던 박세웅이 다음 경기 선발이었다 하더라도 너무 아꼈다.
오사카에서 치른 2차례 평가전에서 박세웅, 원태인, 김원중의 구위가 좋았다. 단기전에는 구위와 컨디션이 좋은 투수를 자주 기용할 수 밖에 없다. 이 감독이 KBO리그에서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이번 WBC에서 호주전에서도, 일본전에서도 투수 교체 과정에서 '강철 매직'이 사라졌다.
대회 직전까지 젊은 투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고, 마무리 고우석의 목 근육통 부상 악재까지 생겼다.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투수 전문가인 이 감독의 뛰어난 투수 운영을 기대했는데, 사라졌다.
9일 호주전에 이어 일본전까지 내준 한국은 이제 체코와 중국은 반드시 이기고, 남은 호주의 경기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실낱같은 경우의 수 희망은 남아있다. 이 감독은 "지금까지 던진 투수들 중 구위가 좋은 투수를 최대한 활용해서 하겠다. 아직 끝난 게 아니기에, 최선 다해서 꼭 승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 기회가 올 수 있을까.
/orang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