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콜드게임도 당해봤잖아요.”
한국 대표팀의 최고참 김광현은 자신의 후계자로 불리는 구창모의 평가전 부진에 대해서 “저는 콜드게임도 당해봤다”라면서 자신의 경험을 들어서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광현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 풀리그에서 5⅓이닝 1실점을 기록했고 준결승전에서 8이닝 2실점을 하면서 ‘일본 킬러’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이후 한일전 성적이 좋지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의 기억을 안고 다시 나선 2009년 WBC 대회 한일전에서는 1⅓이닝 7피안타 8실점을 헌납했다. 일본의 현미경 분석에 김광현이 당해내질 못했고 결국 한국은 2-14 7회 콜드게임으로 대패했다. 이 당시의 기억을 김광현은 스스로 꺼냈다.
하지만 김광현의 말은 복선이었을까. 14년 만에 WBC 도쿄돔 한일전에 선발 등판하게 된 김광현은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끝내 설욕에 실패했다. 되려 14년 전의 아픔을 다시 소환해야 했다.
김광현은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일본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2이닝 3피안타 2볼넷 5탈삼진 4실점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3-0으로 앞서가던 경기에서 너무 신중한 투구를 펼치면서 곧장 4실점을 했고 이후 분위기를 걷잡을 수 없이 일본 쪽으로 넘겨줬다. 김광현의 뒤를 이은 투수들도 연거푸 실점하면서 4-13으로 대패를 당했다. 콜드게임 위기를 가까스로 막았다.
전날(9일) 호주전 충격의 7-8 패배로 8강 진출에 먹구름이 낀 한국은 이날 한일전을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하지만 승리는 커녕 콜드게임 대패를 당하면서 이제 8강 탈락과 서서히 마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김광현은 1회부터 신중하면서도 전력을 다했다. 선두타자 라스 눗바를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콘도 겐스케와의 풀카운트 승부에서는 헛스윙 삼진으로 솎아냈다. 그리고 오타니를 상대로도 풀카운트 승부를 펼쳤고 바깥쪽 낮은 코스로 슬라이더로 꽂아넣으면서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다.
2회에도 선두타자 무라카미 무네타카를 루킹 삼진으로 처리하며 시작했다. 그러나 요시다 마사타카를 2루수 땅볼로 유도했지만 2루수 토미 현수 에드먼이 1루 송구 실책을 범했다. 송구가 관중석으로 들어가면서 요시다를 2루까지 허용했다. 내야안타와 실책이 동시에 기록됐다. 1사 2루의 위기. 그러나 김광현은 오카모토 카즈마를 3구 삼진으로 솎아냈고 마키 슈고 역시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조합으로 헛스윙 삼진으로 유도했다. 2회는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냈다.
타선이 3회초 양의지의 선제 투런포와 이정후의 우전 적시타로 3점을 뽑아냈다. 김광현이 마운드에서 버티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선두타자 겐다 소스케에게 2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볼넷을 허용했다. 결국 이날 콜드게임의 도화선을 제공한 터닝포인트였다. 겐다를 상대로 2스트라이크를 선점하고도 너무 신중하게 승부를 펼치다가 볼넷을 허용했다. 이후 겐다에게 2루 도루를 허용한 뒤에는 나카무라 유헤이를 상대로도 볼넷을 내주며 무사 1,2루 위기를 자초했다. 하위 타선에서 상위 타선으로 연결되는 최악의 상황이었고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눗바를 상대로 풀카운트 승부 끝에 중전 적시타를 맞았고 곤도에게 적시 2루타를 허용한 뒤 김광현은 마운드를 내려왔다. 뒤이어 올라온 원태인이 요시다에게 2탄점 적시타를 맞으면서 김광현의 실점은 4점으로 늘어났다.
사실 김광현의 4실점은 이날 실점 비중 가운데 그리 크지 않았다. 김광현이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15년의 시간 동안 아무도 그 뒤를 이을만한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원태인, 곽빈, 정철원, 김윤식, 김원중, 정우영, 구창모, 이의리, 박세웅이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일본 타선을 억제한 투수들은 아무도 없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