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한일전. 한국은 그래도 한숨을 돌렸다.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고 과거에 한국 타자들이 손도 못 댔던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를 피하고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를 만나게 된다. 누구를 만나든지 한국의 고전을 모두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셈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은 지난 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WBC 1라운드 B조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9일 대회 첫 경기 중국전 선발 투수로 오타니를 예고했다.
이날 구리야마 감독은 오타니를 1차전 선발 투수로 내세우면서 “매우 중요한 1차전 선발 투수는 오타니 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프로 데뷔할 때부터 오타니를 지켜봤지만 팀을 승리로 이끄는 유형의 선수”라고 설명했다.
1차전에 만날 중국은 B조에서 최약체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구리야마 감독은 오타니의 중국전 출격을 망설이지 않고 정했다. 아무리 약체라고 하더라도 14년 만에 정상 탈환에 나서는 첫 경기에 에이스를 투입하는 상징성까지 모두 고려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투타겸업’의 오타니는 현재 완성형의 선수다. 지구상 모든 야구선수들의 워너비와 같은 모습이다. 지난해 투수로 28경기 166이닝 15승 9패 219탈삼진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타자로는 타율 2할7푼3리 160안타 34홈런 95타점 OPS .875의 성적을 남겼다. 2021년 만장일치 MVP 당시의 성적까지는 아니더라도 투타겸업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WBC에서도 오타니의 투타겸업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오타니는 “투타겸업은 나다운 스타일이다. 나다운 자신있는 플레이를 하고 싶다. 몸 상태에도 커리어 통틀어서 가장 좋다”라면 서 자신감을 과시했다. 오타니는 결국 현재 팀내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고 초전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간과하지 않는 일본의 특성과 결부되어서 1선발로 발탁됐다.
한국 입장에서 오타니의 중국전 선발 확정 소식은 그나마 다행이다. 오타니는 한국전에 단 2경기 나왔지만 너무 강렬했던 인상을 남겼다. 8년 전 2015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에서 한국전 2경기 13이닝 3피안타 2볼넷 21탈삼진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13이닝 무실점. 개막전에서 6이닝 무실점, 4강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한국 타자들을 완전히 압도했다. 한국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런 공포의 대상을 피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오타니를 피하니 다르빗슈라는 거물 선발 투수가 등장했다. 일본대표팀 최고참인 다르빗슈는 메이저리그 95승, 일본에서 93승 등 통산 197승을 기록 중인 대투수. 그리고 한일전의 역사에 다르빗슈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2009년 WBC에서 9회 마무리를 위해 올라온 다르빗슈는 9회 동점타를 맞아 블론세이브를 범하며 아픔과 함께 좌절하는 듯 했지만 다음 이닝 다시 앞서나간 점수 차를 지키며 우승의 포효 당시 마운드에 있었다. WBC 한일전의 역사에 다르빗슈는 하이라이트를 담당했다.
한국이 다르빗슈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14년 전인 2009년이었다. 14년이라는 세월은 많은 것을 바뀌게 만든다. 다르빗슈는 2009년 일본 무대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메이저리그에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는 선발 투수다. 그 역사와 함께 베스트 선발 투수를 내세운다는 구리야마 감독의 포석이다.
아울러 투구수 제한과 휴식일도 오타니에 이어 다르빗슈를 먼저 내세우는 이유다. 투구수 제한 규정에 따라서 한 사람당 최대 65구를 던지면서 50구 이상 던진 사람은 4일 간 출전하지 못한다. 의무 휴식이다. 이들이 먼저 나서야 8강 이상의 중요한 경기들에 상성을 따라서 투입할 수도 있다. 한일전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다만 1선발이라는 상징성은 이제 오타니가 갖는 듯한 분위기다. 다르빗슈는 이제 관록을 가득 담아서 한일전에 나설 전망이다. 다르빗슈 역시도 한국은 쉽지 않다. 하지만 9일 호주전을 승리한다면 다시 만난 다르빗슈도 기세로 밀어붙일 수 있다.
과연 일본의 셈법에 우리는 그대로 따라가게 될지, 아니면 한국 나름대로 페이스를 찾고 맞불을 놓을지, 10일 열리는 한일전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