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제(7일) 한신과의 WBC 평가전(오사카 교세라돔) 때다. 9회 말 수비만 남았다. 스코어는 7-4로 안정권이다. 아웃 카운트 2개면 끝난다. 이 때 TV카메라가 우리 쪽 벤치를 훑는다. 병원 다녀온 고우석도 있다. 다들 여유 있는 표정이다. 한편으로는 비장함도 엿보인다. ‘이제 도쿄로 간다. 실전만 남았다.’ 그런 눈빛들이다.
그 중 1열에 눈길이 간다. 이정후-양의지-김하성-박병호-현수 에드먼이 나란히 앉았다. 맨 앞 줄에서 승리를 즐기고 있다. 전현직, 그리고 미래의 메이저리거 조합이다(미안하지만 양의지는 빼고). 태극 전사 중 가장 화려한 라인업이다. 대표팀 전력의 핵심 멤버들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이들의 분위기다. 따지자면 꽤 차이 나는 관계다. 최고참격인 박병호(37), 양의지(36). 그리고 막내는 아니지만 한참 아래인 이정후(25)와 김하성(28)이다.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에드먼(28)도 마찬가지다. 10년 안팎의 연배 차이다.
그런데 위화감은 전혀 없다. 오히려 반대다. 얘기하는 건 주로 이정후와 김하성이다. 두 고참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떠든다(?). 듣는 사람은 너그러운 표정이다. 끄덕이며 빙긋이 웃음지을 뿐이다. 위계, 어려움, 스스럼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대표팀 한정 금기 식품도 등장한다. 이정후가 양의지와 ‘맞껌’을 질겅거린다. 바로 뒤에 강백호가 보는 데서 말이다.
또 한가지는 현수(에드먼) 챙기기다. 낯 설고, 물 선 곳 아닌가. 태극마크를 위해 태평양을 건넌 손님이다. 그의 덕아웃 지정석은 박병호 옆자리다. 경기 중 스몰 토크하는 모습이 자주 팬들에게 목격된다.
이미 대표팀 합류 때부터 조력자를 자처했다. “(김)하성 외에도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뛴 박병호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KBO리그에서 오래 활약한 선수다. 야구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영어도 잘한다.” (토미 현수 에드먼)
박병호의 영어 실력에 얽힌 일화는 많다. 그 중 미네소타 트윈스 시절의 얘기다. MBC Sports+ 김선신 아나운서가 한 일간지에 기고한 경험담이 생생하다.
당시 통역 직원이 비자 문제로 하루 자리를 비웠다. 현지 언론의 (박병호를) 인터뷰 스케줄이 난감해졌다. 그러자 미국 기자가 김선신 아나운서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막상 얘기가 시작되자 ‘왕따’가 됐다. 박병호 스스로 질문을 거의 알아듣고, 대답을 한 것이다.
현지 매체 스타 트리뷴은 그의 영어 실력에 대한 기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화 중에 LOL이라는 말을 쓴 것에 놀란 눈치다. Laughing Out Loud의 이니셜, 온라인 채팅 때 쓰는 말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ㅋㅋㅋ’ 또는 ‘ㅎㅎㅎ’ 쯤 된다.
스스로는 “영어 잘 못한다”며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라는 고급 어휘를 동원한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안다. 그는 LG시절부터 외국인 선수들과 얘기하는 것을 즐겼다. 스스럼 없이 대화하고, 어울릴 정도다.
보통은 그런 풍경이다. 고참은 고참들끼리, 맨 뒤쪽에서 느긋함을 즐긴다. 노출이 많은 앞 자리는 대개 신참들 차지다. 또는 치어리더 역할들이 분위기 살리는 곳이다. 나름의 위계와 서열이 존재한다. 지금의 대표팀처럼 이렇게 격의 없고, 친근한 그림은 쉽지 않다.
흔히 현장에서 하는 말이다. 승리는 그라운드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클럽하우스와 덕아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만큼 팀 케미스트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대표팀 벤치 1열, 맨 앞 줄의 화기애애함과 유대감이 내일(9일) 호주전에서 다시 한번 빛나야 한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