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감독님 처럼 했어야 하나.”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이 대회 첫 공식 평가전에서 패배했다. 경기 후 일본 기자의 도발적인 질문에 간판 타자 이정후(키움)는 울분을 살짝 터뜨렸다.
한국 대표팀은 6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와 공식 평가전에서 2-4로 패배했다. 이날 대표팀은 메이저리거 김하성, 토미 현수 에드먼이 처음으로 실전 경기에 출전하면서 완전체 전력으로 나섰다.
마운드의 투수들은 괜찮게 던졌는데 실책 3개가 발목을 잡았다. 선발 소형준이 1회 1점을 허용했고, 2회 오지환의 실책 2개로 비자책 2실점을 내줬다. 6회 3루수에서 유격수 자리로 옮긴 김하성의 2사 후 실책으로 또 1점을 허용했다.
완전체 타선은 찬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1회 2사 1,2루에서 박병호가 3구삼진, 5회 1사 1,3루에서는 김하성이 유격수 병살타로 물러났다. 대표팀은 0-4로 뒤진 9회 이정후, 박해민, 박건우의 안타와 이지영의 희생플라이로 2점을 추격했다.
오릭스는 이날 타선은 2군 선수들이 대부분이었고, 투수는 지난해 필승조들이 8회까지 차례로 등판했다. 지난해 불펜으로 27경기 2승2패 5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36의 성적을 남겼다. 구로키 유키가 선발로 나와 5이닝을 던지며 6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으로깜짝 호투를 했다. 이후 메이저리거 출신의 히라노(11홀드 28세이브 ERA 1.57), 히가(10홀드 ERA 2.53), 혼다(14홀드 ERA 3.50)가 1이닝씩 던졌다. 9회 등판한 마에는 통산 1군 경험이 1경기도 없는 2군 투수였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 한 일본 기자는 이강철 감독에게 다소 무례하고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 그는 ‘오늘 오릭스 주력 멤버가 아닌 2군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패배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한 것.
국제대회에서 패배 팀을 향한 질문으로는 적절치 못했다. 야구 경기라는 것이 3연전을 하면 꼴찌 팀이 1위 팀을 한 번 이길 수도 있고, 10경기를 하면 아무리 최강 팀이라도 2~3번은 질 수 있다.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이정후는 이 질문을 듣고 굳은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강철 감독과 김하성도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이강철 감독은 “2군이든 간에 어느 팀을 만나더라도 투수 1명이 잘 던지면 이기는게 야구다. WBC는 단기전이고, 어떤 투수가 나와서 그 투수를 공략 못해 점수를 못 내면 지는 게 야구다. (오릭스) 투수들이 좋았다. 변명하고 싶진 않지만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했기에, 그 선수를 알면 나중에는 분명 이길 거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정후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서 가슴 속의 울분을 드러냈다. 그는 “허재 감독님처럼 했어야 하는데, 한 번 ‘허재’ 했어야 하나…”라고 말했다.
허재 감독은 과거 농구 대표팀 감독일 때 국제대회 공식 기자회견에서 중국 기자의 무례하고 도발적인 질문에 과감없이 쓴소리를 내뱉은 적이 있다.
2011년 중국 우한에서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한국과 중국의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기자는 질문 막바지 허재 감독에게 난데없이 경기 내용과 관계없는 ‘경기 전 중국 국가가 연주될 때 한국 선수들의 자세’를 문제삼는 질문을 했다.
허 감독은 황당한 질문을 듣고서는 “뭔 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그래. 진짜 짜증나게”라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기자회견장을 나왔다.
이정후는 일본 기자의 도발에 허재 감독의 일화를 떠올린 것이다. ‘허재 감독님처럼 했어야 하나’라는 말은 그만큼 열받았다는 의미다.
이강철 감독은 첫 평가전을 패배했지만, “지금 투수들이 전체적으로 많이 올라와 있고, (타자들이) 오랜만에 빠른 공도 쳐봤고, 변화구도 많이 봤다. 타자들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많이 갔지만, 타이밍이 좋아서 좋은 경기를 봤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7일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한신 타이거즈와 마지막 평가전을 치른다. 이정후를 비롯한 대표팀이 승리를 거둘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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