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이 아닌데 기꺼이 흔쾌히 와줘서 참 고맙죠.”
‘한국인 1호 메이저리거’ 박찬호(50)는 지난달 1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에 차려진 키움 히어로즈 스프링캠프 현장을 방문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해설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어릴 때부터 함께한 ‘죽마고우’ 홍원키(50) 키움 감독의 부탁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날 박찬호는 장재영 등 키움 투수들의 불펜 피칭을 지켜본 뒤 원포인트 레슨을 했다. 야수들을 포함한 선수단 전체 미팅 시간에도 야구 선배로서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미팅이 너무 길어져서 내가 중간중간에 잘랐다”는 홍원기 감독 농담에는 둘도 없는 친구에 대한 고마움이 깊게 배어 있었다.
미국 애리조나 캠프 기간 만난 홍 감독은 박찬호의 방문에 대해 “선수들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된 시간이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진심인 찬호의 한마디 한마디가 어린 선수들에게 특히 도움이 됐을 것이다”며 “내가 코치할 때부터 찬호에게 부탁해 우리 팀 캠프에 자주 왔다.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현역 선수일 때부터 그랬으니 굉장히 오래됐다. 우리가 미국에 올 때마다 찬호가 캠프에 와서 선수들에게 좋은 말과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를 가졌다. 쉬운 일이 아닌데 기꺼이 흔쾌히 와줘서 참 고맙다”는 진심을 전했다.
홍 감독과 박찬호의 인연은 아주 오래됐다. 같은 충남 공주 출신으로 중동초-공주중-공주고를 함께 다니며 야구했다. 공주중 2학년 때까지 에이스였던 홍 감독이 팔이 아파 3학년 때 야수로 전향하면서 3루수였던 박찬호가 본격적인 투수의 길을 걸었다. 홍 감독이 고려대로, 박찬호가 한양대로 진학하면서 각자 다른 길로 갔지만 훗날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가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한 유일한 한국 야구인이 홍 감독일 만큼 각별한 우정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박찬호는 지난해 11월5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도 홍 감독 초대로 방문했다. 당시 박찬호는 “좋은 인품을 가진 훌륭한 친구다.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친구 홍 감독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홍 감독은 박찬호와 오랜 우정의 비결에 대해 “친구들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제 일처럼 기뻐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좋은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게 더 어렵다고 한다. 난 찬호가 메이저리그에 가고 잘할 때 제 일처럼 좋았다. 그런 것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거로 잘 나갈 때 기자들이 선수였던 홍 감독에게 그의 소식을 물어보는 것도 다반사였다. 박찬호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같이 호텔에서 생활하기도 했던 홍 감독은 “내가 매니저도 아닌데 기자 분들이 나한테 찬호 소식을 물어보고 그랬다”며 오래 전 추억을 웃으면서 떠올렸다.
지금은 ‘투머치토커’라고 불리며 말 많은 아저씨로 친근한 이미지인 박찬호이지만 한때 말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홍 감독은 “원래부터 찬호가 투머치토커는 아니었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힘들 때 위축된 시기도 있었다. 그런 힘든 시기를 보낸 뒤 여러 교류를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길어지지 않았나 싶다. 지금 찬호가 여러 사람들한테 강의하는 것을 보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 선수한테도 ‘길어서 힘들지 않냐’ 물어보니 좋은 말이라서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4차전 때 박찬호를 초청한 또 다른 이유도 들려줬다. “감독으로서의 모습을 찬호한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당시에는 재계약 같은 결정이 안 난 상태였고, (감독으로서) 고척 홈에서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 전날 연락했더니 찬호가 모든 스케줄을 빼놓고 왔다. 그날 경기도 재미가 있었고, 극적으로 이겼다(6-3 역전승). 경기 끝나고 감독실에 내려온 찬호가 ‘너무 감명 깊게 봤다’고 말해줘서 뿌듯했다. 굉장히 좋았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아깝게 놓쳤지만 3년 재계약으로 지도력을 인정받은 홍 감독. 이제는 우승 감독으로 죽마고우의 축하를 받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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