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이틀 전(3일)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이다. 연습경기가 끝났다. 이글스 멤버들이 덕아웃 앞에 모였다. 게임 MVP 시상식이다. “투수 (버치) 스미스 선수.” 첫번째 수상자의 이름이 불린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금일봉을 전달한다. 박수와 함께 싱글벙글한 표정이 등장한다.
두번째 수상자 역시 투수다. 반성문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김서현이다. 이날이 첫 실전 등판이다. 7회에 나와 1이닝을 1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최고 구속이 153km까지 나왔다. 평균도 152km를 찍었다. 공 10개로 간단히 끝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름이 불릴 차례다. 이 때 약간의 페이크가 숨어있다. ‘노시환’이라는 이름이 먼저 불렸다. 홈런을 쳤으니 그럴 법했다. 하지만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노시환…이 아니고, 이진영 선수입니다.” 속임수의 희생자는 움찔한다. 머쓱한 웃음, 나인들의 키득거림과 갈채가 터졌다. 수베로 감독도 즐겁다. 힘찬 하이 파이브와 토닥토닥으로 축하 인사와 기특함을 건넨다. 봉투를 받아 든 수상자도 의외라는 표정이다. 그럴 법하다. 볼넷 하나 얻은 게 전부다. 그런데 왜 뽑혔는 지 모르겠다.
두어 시간 전이다. 이글스-랜더스의 연습게임이 한창이다. 0-0이던 2회 말이다. 1사 후 이진영이 볼넷을 골랐다. 다음 장진혁의 우전안타가 이어졌다. 계속된 1, 2루다.
마운드의 상대 투수는 새 얼굴 커크 맥카티다. 이글스 벤치가 뭔가를 발견한 것 같다. 좌완 맥카티의 세트 모션이 크고 허술해 보인다. 곧바로 초구에 움직인다. 더블 스틸이다. 3루는 이미 늦었다. 포수(이재원)가 2루에 쐈지만, 어림도 없다. 넉넉한 세이프다. 1사 2, 3루로 변했다.
득점 기회서 박상언의 타구는 실망스럽다. 높이 뜬 플라이다. 내야를 조금 벗어난 깊이다. 중견수 김강민이 특유의 수비폭을 자랑한다. 20미터 넘게 달려와 공을 잡아낸다. 따지자면 2루수(최주환) 조금 뒤쪽이다. 주자들이 감히 딴 생각할 위치가 아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3루 주자가 베이스로 돌아간다. 리터치 자세다. 그리고 폭발적인 스타트를 끊는다. 화들짝. ‘짐승’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홈에 원 바운드로 레이저를 쏜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생긴다. 그림 같은 슬라이딩이다. 포수의 태그를 피하며 빙그르 돌아 오각형을 터치한다. 이재원의 미트는 허공을 가른다. 아슬아슬 세이프. 선취점이자, 결승점이 올라간다.
이글스 덕아웃은 희희낙락이다. 수베로 감독이 반갑게 이진영을 마중 나간다. 반면 ‘짐승’은 자존심이 상한다. 푸~ 하는 한숨이다. 피식, 실소도 새나온다. ‘당했다’ 하는 표정이다. 뒤이어 오선진의 적시타가 2점째를 보탠다.
결국 이 경기는 5-1의 스코어로 끝난다. 연습경기 최강자가 작년 챔피언마저 꺾은 것이다.
다시 경기 후 모습이다. 시상식 직후 이글스 TV가 수상자를 인터뷰했다. 이진영의 차례다. “안타도 못 쳤는데 왜 인터뷰를?”이라며 카메라 앞에 선다. 사실 수베로 감독의 총평에 답이 있다.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이진영의 플레이다.” 그렇게 콕 집어 칭찬을 해줬다.
얼떨떨한 MVP의 설명이다. “오늘 경기 전에 감독님이 주루플레이를 공격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셨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뛰었는데, 감독님이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득점 순간은 이렇게 풀이한다. “얕은 플라이라서 ‘상대가 방심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예 뛸 생각을 안했다. 그냥 스타트만 끊었다가, 송구를 보면서 들어가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나가다 보니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송구가 좀 앞으로 와서(짧아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같다.”
짐승의 수비는 이미 정평이 자자하다.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 수상자(후안 라가레스)마저 좌익수로 보낼 정도다. 넓은 범위와 강력한 저격 능력을 모두 갖췄다. 40대 나이에도 자존심은 여전하다. “외야에는 나하고, (최)지훈이 둘만 있어도 된다. 내야에 한 명 보내줘도 충분하다.” 그렇게 큰 소리 칠 정도다.
하지만 이날은 허를 찔렸다. 꼴찌 팀의 당돌함에 당한 것이다. 그들은 요즘 엄청 진지하다. 연습경기라고 사리는 법 없다. 덕분에 2, 3월 승률이 좋다. 네델란드 대표팀을 연파하더니, 이제 지난 해 챔피언마저 꺾었다.
하다못해 게임 전 화이팅에도 민감하다. 본래 선창자는 채은성이었다. 그러나 이날 자로 해임(?)됐다. 지난 경기서 연승이 깨진 탓이다. 대신 이원석으로 교체됐다. 그만큼 승리에 절실한 그들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