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한 액땜이 있을까. 그리고 이보다 더 배신을 할 수 있었을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이 대회 시작도 전에 온갖 악재와 마주하고 있다. 다음달 9일 호주와의 조별라운드 첫 경기를 열흘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컨디션 관리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난 1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했던 WBC 대표팀. 사령탑 이강철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KT 위즈가 캠프지를 차린 곳이었고 활용할 수 있는 야구장도 많았다. 또한 KT, NC, KIA, LG 등 스파링파트너들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온화한 날씨 로 프런트, 현장 코칭스태프, 선수들 모두 만족하는 최적의 훈련 장소였다.
그러나 소집 후 훈련 과정과 연습경기부터 삐걱거렸다. 온화한 날씨는 온데간데 없었고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다. 이상한파에 악천후까지 겹쳤다. 때로는 눈까지 뿌리는 등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23일 KT 연습경기는 강풍에 연기됐고 27일 LG전까지 악천후에 취소됐다. 투수들의 컨디션이 오르지 않은 채 결국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가장 큰 악재는 귀국하는 날 터졌다. 대표팀은 28일 투손에서 LA를 거쳐서 다음달 1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투손에서 LA까지는 3대의 비행기로 나눠서 이동한 뒤 LA에서는 비행기 2대로 귀국한다는 계획.
그런데 이강철 감독을 비롯한 김민호, 김민재, 심재학 코치 등 코칭스태프와 고영표, 소형준, 강백호(이상 KT), 고우석, 정우영, 김윤식, 오지환, 김현수, 박해민(이상 LG), 이지영 김혜성, 이정후(이상 키움), 김광현, 최정, 최지훈(이상 SSG), 김원중(롯데), 곽빈, 정철원(이상 두산) 등 22명이 탑승하려던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이륙하지 못한 것.
탑승까지 했지만 기체 결함이 발견돼 다시 내려야 했고 비행기는 결국 결항됐다. 이날 더 이상 LA로 이동하는 비행기편은 없는 상태. 결국 대표팀은 투손에서 발이 묶였다. 대신 LG 구단의 협조를 구해서 버스로 LA 공항까지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이마저도 운전 기사의 법정 근로 시간 때문에 LA에서 출발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일단 LA까지 8시간을 이동해야 하기에 기존에 예약해 놓은 한국행 비행기는 탑승하지 못했다. 결국 다시 한국행 비행기편을 구해야 했고 현지 시간으로 28일 오전에 이륙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편을 타고 귀국한다.
KBO 관계자는 “그래도 이륙 전에 결함이 발견돼서 불행 중 다행”이라며 안도했지만 추후 일정 및 선수단의 컨디션 관리에 문제가 생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투손에서 LA까지 항공편으로 대략 90분 정도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LA국제공항까지 육로로는 약 8시간 가량을 이동해야 한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에야 도착할 전망. 그리고 곧장 오전 비행기를 타고 13~14시간 가량의 비행을 해서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 피로가 쌓일 수 밖에 없는 일정이다.
이후 대표팀은 2~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훈련과 연습경기를 치르고 4일 일본으로 이동, 5일부터 오사카에서 한신 타이거즈, 오릭스 버팔로스와 연습경기를 치른다. 그리고 7일 연습경기를 치른 뒤 곧장 결전의 장소인 도쿄돔으로 이동해 호주와의 첫 경기를 치른다. 일정이 빡빡하다.
믿었던 애리조나의 배신은 이강철호가 지옥의 행군을 펼쳐야 하는 일정으로 돌아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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