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0-0이던 2회 2사 1루다. 원정 팀 매리너스 마이크 포드의 타석이었다. 카운트 0-1에서 2구째가 가운데로 몰렸다. 힘껏 돌린 배트에 정타가 터졌다. 타구는 우중간으로 까마득히 솟아오른다. 출발한 1루 주자는 2루, 3루를 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내친 김에 홈까지 도전이다.
하지만 수비도 만만치 않다. 중견수(호세 아조카) 부터 이어지는 배송이 기민하다. 중간책 2루수가 택배 쪽에는 전문이다. 안방까지 원 바운드로 정시 도착. 굳이 구심의 콜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명백한 아웃이다. 주자 J P 크로포드는 허무하게 쓴 웃음 짓는다.
반면 수비 쪽에서는 환호가 터진다. 포수 루이스 캄푸사노는 검지로 택배 전문가를 가리킨다. 곁에서 지켜보던 유격수(잰더 보가츠)는 한 술 더 뜬다. 주인공을 끌어안는 리액션이다. 1루쪽 관중석에서도 환호와 갈채가 쏟아진다.
사흘 전(한국시간 25일) 애리조나 피오리아 스타디움. 파드레스의 시범 경기 장면이다. 2루수 김하성의 저격이 화제가 됐다.
사실 이 장면에는 옥의 티가 있다. 완벽한 중계 플레이의 이면이다. 커트맨 김하성의 위치가 조금 이상했다.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자. 2사 1루. 우중간 펜스까지 가는 장타가 터졌다. 이 순간 수비는 1루 주자를 걱정해야 한다. 3루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홈은 지켜야 하는 대목이다. 반대로 공격 쪽은 2사 이후라서 승부를 걸고 싶다.
그런데 실전의 중계 플레이는 달랐다. 커트맨(2루수)의 위치가 애매했다. 2루 또는 3루를 목표로 한 지점에 서 있었다. 그러니까 1루 주자의 3루행, 또는 타자의 2루행을 막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3루는 늦었고, 2루는 텅 빈 상태다. (유격수 보가츠가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지 않았다.)
실제로 중견수-2루수-포수로 이어진 배송 라인은 애매했다. 본래는 일직선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 그런데 약간 꺾어진 각도로 이뤄졌다. 비효율적이고, 매끄럽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한 열쇠가 있다. 바로 커트맨의 어깨다. 2루수(김하성)의 강력하고, 정확한 저격 능력으로 상황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신부님(파드레스)이 금고문을 활짝 열었다. 거액의 장기 계약을 연달아 성사시킨다. 유격수 보가츠를 2억 8000만달러에 영입한데 이어, 3루수 매니 마차도를 3억 5000만 달러에 붙잡았다. 둘 다 11년짜리 딜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경사다. 공수를 겸비한 수퍼 스타다. 클럽 하우스를 이끌어 갈 리더들이다. 초호화 3ㆍ유간을 구축하게 됐다. 덕분에 한동안 내야 걱정할 일은 없어졌다. 안정적으로 대사를 도모할 기반이 마련됐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늘도 짙어지는 법이다. 팀 내 경쟁의 여지는 줄어들었다. 보가츠는 자기 자리를 절대 내놓지 않는다. 유격수를 철저히 고수한다. 마차도도 마찬가지다. 언감생심 기웃거릴 여지도 없다. 다른 선수들은 남은 기회를 나눠야 한다.
김하성도 그 중 하나다. 2년간 출장 이닝은 유격수(1352)가 절대적이다. 그 다음이 3루수(337), 2루수(148) 순이다. 그나마도 지난 해는 3ㆍ유간만 오갔다. 2루수로는 뛰지 않았다. 가장 낯선 포지션에서 경쟁해야 할 처지다.
그것도 쟁쟁한 라이벌들과 겨뤄야 한다. 페타주, 제이크 크로넨워스의 자리도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빛나는 장점인 어깨를 자랑하기 어려운 곳이다. 깊은 곳에서 잡아서 폭발적으로 1루에 쏘는 멋진 장면은 사라질 것이다. 며칠 전 같은 중계 플레이 말고는 그렇다.
파드레스 입단 후 그를 괴롭히는 키워드가 있다. ‘입지’라는 단어다. 늘 좁아지고, 늘 걱정되는 상황이다. 그래도 그동안은 어찌어찌 잘 버텼다. 하지만 2개의 11년 계약은 조금 다른 의미다. 철밥통, 고인물 그런 말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변화가 나을 지도 모른다. 더 많은 기회를 위해서 말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