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선발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아요.”
한화 우완 투수 윤대경(29)에게 2022년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 해였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선발로 준비한 그는 5월초까지 개막 한 달간 선발 5경기에서 3번이나 퀄리티 스타트했다. 2⅓이닝 6탈삼진 퍼펙트로 막은 4월9일 대전 KT전 구원등판 포함 시즌 첫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68로 준수했다. 외국인 투수들의 동반 부상과 김민우의 난조 속에 윤대경이 시즌 초 한화 선발진의 중심을 잡아줬다.
그러나 5월 중순부터 급격하게 페이스가 꺾였다. 특히 5월26일 대전 두산전에서 ⅔이닝 9실점으로 악몽 같은 하루를 보냈다. 6월초 2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로 반등하는가 싶었지만 회광반조였다. 이후 3경기 연속 5실점 이상 허용하며 2군으로 내려갔다. 7월부터 불펜으로 보직을 바꿨지만 한 번 흔들린 밸런스를 시즌 끝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5경기(75⅓이닝) 4승9패 평균자책점 7.41. 선발 14경기 3승8패 평균자책점 8.02로 크게 무너졌다.
호세 로사도 한화 투수코치는 지난해 시즌 후 “윤대경이 원래 보직인 불펜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팀 사정으로 올해 선발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며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새 시즌을 앞두고 미국 애리조나에서 1차 스프링캠프를 가진 윤대경은 “선발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동안 선발을 해보지 않아 몰랐는데 한 시즌 풀로 체력을 유지하면서 던지는 게 어려웠다. 남들이 보기엔 5일에 한 번씩 던지니 편하게 보일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불펜보다 더 체력적 피로감이 느껴졌다. 한 번에 길게 던지는 것도 어렵고, 다음 등판에 맞춰 회복하고 준비하는 것도 버거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삼성에서 방출된 뒤 일본 독립리그를 거쳐 2019년 한화에 온 윤대경은 2020년 6월 1군에 데뷔했다. 그해 55경기(51이닝) 5승7홀드 평균자책점 1.59로 깜짝 활약하며 한화 불펜 핵심으로 자리잡았고, 2021년에도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6월에 닉 킹험의 부상 기간 대체 선발로 투입되면서 길게 던지는 능력을 보여줬다. 2021년 선발 9경기 1승3패 평균자책점 3.63으로 좋았다.
윤대경은 “2021년 대체 선발로 몇 경기 잘 던지면서 ‘나도 선발투수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가졌다. 지난해는 캠프 기간 선발 확정은 아니지만 염두에 두고 준비를 했는데 갈수록 쉽지 않았다”며 “시즌 초반 이후로 체력이 떨어지면서 팔 스로잉에 변화가 생겼다. 팔 스윙이 밋밋해지면서 공을 때리지 못했다. 어거지로 던지다 보니 밸런스가 무너졌고, 공에 실리는 힘이 많이 떨어졌다. 이상한 습관이 생기면서 이도저도 아니었다”고 되돌아봤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선수로서 이 역시 하나의 큰 경험이다. 윤대경은 “선발을 안 해봤으면 선발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텐데 이제는 후련하다. 선발에 대한 미련이 없다. 이제는 선발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다. 역시 사람은 하던 것을 해야 된다”며 웃어 보였다.
익숙한 불펜으로 돌아가는 윤대경이지만 위기 의식이 커졌다. 팀에 FA, 트레이드 등 이적생과 신인까지 새로운 투수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내부 경쟁 강도가 몰라보게 세졌다. 윤대경은 “지난해 선발로 좋지 않은 성적으로 (팀 내 입지가) 애매해졌다고 생각한다. 올해 못하면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확실한 존재감을 다시 심어줘야 한다”며 “올해는 1이닝을 책임지고 막을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주는 투수가 되고 싶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