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6년 전 고척 돔에서 열린 WBC 1라운드 때다. 한국은 첫 경기서 이스라엘에 1-2로 패했다. 이어진 네델란드전. 여기서 패하면 예선 탈락이 결정적이다.
선발 우규민이 1회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았다. 다음은 2번 주릭슨 프로파다. 카운트가 3-1로 타자편이다. 어쩔 수 없는 5구째였다. 먼 쪽에 낮은 131km짜리가 존을 통과한다. 순간 타자가 앞으로 따라붙는다. 이어 벼락같은 스윙이 폭발했다.
‘빡~’. 공 깨지는 파열음이다. 동시에 관중석이 싸늘해진다. 타구는 까마득히 솟아올랐다. 그리고 펜스 너머로 아득히 사라졌다. 경기 시작 5분 남짓이다. 스윙 하나, 그걸로 2-0이 됐다. 나머지는 시간 낭비였다. 사실상 승부는 거기서 끝났다. (0-5 패배)
한국은 1회 대회 4강, 2회 대회 준우승의 강팀이다. 게다가 처음 홈에서 치른 예선 라운드다. 자신만만했지만 스텝이 꼬였다. 시작부터 연패를 당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치욕을 안긴 상대는 네델란드다. 라인업이 화려하다. 메이저리거가 내야를 가득 채웠다. 올스타 유격수만 3명(잰더 보가츠, 디디 그레고리우스, 안드렐턴 시몬스)이다. 포지션 교통 정리가 골치 아플 정도였다.
이들 만이 아니다. 한국전 결승포의 주인공 프로파, 2루수 조나단 스쿱, 마무리 투수 켄리 잰슨 등이 20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다.
네델란드 대표팀의 주력은 자치령 퀴라소(Curacao) 출신들이다(보가츠는 퀴라소 옆 아루바 섬 태생). 베네수엘라 위에 있는 작은 섬이다. 면적이 고작 440㎢에 불과하다. 제주도의 1/4 밖에 안된다. 인구라고 해봐야 15만 정도다.
이들은 어린 시절 돌밭에서 야구를 배웠다. 잡초와 자갈투성이 그라운드였다. 실밥이 다 풀어진 낡은 공을 가지고 놀았다. 돌부리에 튄 공에 코피를 쏟고, 이빨이 깨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뛰어난 유격수가 많다는 설도 있다.
그들이 2004년 리틀 리그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다. 이 때 주력 멤버들이 막강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우리로 치면 황금세대다. 2011년 마지막 야구 월드컵에서는 쿠바를 쓰러트리고 정상에 섰다. WBC에서도 파란을 일으켰다. 2009년 대회 때는 최강 도미니카를 두 번이나 쓰러트렸다. 그리고 2013년과 2017년 연속으로 4강에 진출했다.
올해 대회도 이 때 멤버들이 상당수 남아 있다. 본국에서 작위까지 받은 디디 경(그레고리우스), 안드렐턴 시몬스, 블라디미르 발렌틴, 로저 버나디나, 조나단 스쿱 등이다. 잰더 보가츠와 캔리 잰슨은 추후 합류할 예정이다.
이런 다크호스가 출발부터 비틀거린다. 연습 경기에서 만난 의외의 난적 탓이다. 첫 두 경기를 모두 패했다(스코어 1-4, 4-15). 공수에서 밀리는 경기였다. 상대 투수에 기를 못 펴고, 마운드는 연타를 허용하며 무너졌다. 2주 남은 대회가 걱정될 지경이다.
첫 경기 시작부터 숨이 막힌다. 선발 문동주의 맹렬함에 맥을 못춘다. 2회까지 삼진 2개를 당했다. 디디 경은 하이 패스트볼에 허무하게 끌려나갔다. 패트릭 리더는 먼 쪽 직구에 ‘얼음땡’이 됐다. 최고 구속 156km에 속수무책이다. 자기들끼리 ‘굉장한 친구야’라며 수군거린다.
2차전은 대패였다. 1회부터 노시환의 밀어친 (투런) 홈런에 김이 샜다. 장단 15안타에 4사구 11개를 허용하며 무너졌다. 반면 상대 투수는 나오는 족족 잘 던진다. 펠릭스 페냐가 2이닝 1실점, 한승혁과 김종수, 장시환이 1이닝씩 무실점으로 막는다.
특히 개막전 선발 후보라는 장민재에 혀를 내두른다. 별 것도 아닌 공에 2이닝 동안 삼진 3개를 먹었다. 구속은 130 km 중반이지만, 펄럭이며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연신 강풍기를 돌린다. 덕아웃에서는 “역시 마스터”라는 감탄이 터진다.
물론 연습 경기다. 큰 의미가 있겠나. 하지만 의아한 일이다. 상대는 세계 랭킹 7위의 국가대표 팀이다. 전현직 메이저리거가 버티는 다크호스다. 어쩌면 WBC 2라운드에서 한국과 4강 진출을 다투게 될 팀이다.
반면 스파링 파트너는 어떤가. 3년 연속 리그 꼴찌다. 올해도 영락없이 하위권 후보다. 국가대표는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게다가 거듭된 논란에 욕만 잔뜩 먹고 있다. 그런 팀이 이변이라면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이것이 반등의 계기로 이어질 것인가. 지켜볼 일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