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난 지 어느새 5년이 흘렀다. KIA 타이거즈 우승을 이끈 주역에서 추억의 저편으로 잊혀져 가는 이름, 로저 버나디나(38)가 모처럼 등장했다. 네덜란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멤버로 KBO리그 팀과 연습경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버나디나는 22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솔트리버 앳 토킹스톡에서 치러진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의 연습경기를 마치고 한국 취재진과 만났다. 이날 4번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한 뒤 중간에 교체된 그는 한국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했고, 반가운 얼굴로 취재진을 마주했다.
버나디나는 “한국팀을 상대로 경기하는 것 자체가 기쁘다. 한국에 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잘 대해줬다. WBC에서 한국 대표팀을 상대하면 정말 기분 좋을 것 같다”며 “한국 대표팀에 나성범, 양현종(이상 KIA)이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KIA에서 뛸 때는 없었지만 젊은 좌완 투수(이의리)도 좋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버나디나에게 한국 야구는 여전히 가슴 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KBO리그에 뛰면서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이 내게 큰 도움이 됐다. 여러 나라에서 뛰어봤지만 한국 야구팬들이 최고였다. 나로서는 굉장한 경험이었다. 좋은 경험과 추억, 기억을 만들어준 한국팬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한국 시절을 돌아봤다.
특히 버나디나가 속한 KIA는 KBO리그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전통의 강호. 2017년 첫 해 KIA 통합 우승 멤버로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받았다. 2018년을 끝으로 한국을 떠났지만 KIA에 새로운 외국인 타자가 들어올 때마다 그와 비교되곤 한다. 올해 KIA와 재계약에 성공한 2년차가 된 외야수 소크라테스 브리토도 입단 때부터 제2의 버나디나로 불려왔다.
버나디나도 소크라테스가 KIA에 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소크라테스가 좋은 활약을 했다. 올 시즌에도 KIA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외국인 타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KIA는 좋은 전력을 갖췄다. 2017년 이후 다시 한 번 우승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KIA에 행운을 빈다”고 여전한 애정을 표했다.
한국을 떠난 2019년부터 버나디나는 대만, 멕시코, 니카라과를 거쳐 최근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85년 6월생으로 만 38세 노장이 됐지만 은퇴 생각은 없다. “아직 몸 상태가 좋다. 달리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 몸이 허락한다면 앞으로 2~3년은 더 뛰고 싶다”는 것이 버나디나의 말이다.
지난 2013년 이후 10년 만에 네덜란드 대표팀 멤버로 참가하는 WBC는 버나디나에게 마지막 국가대표 기회가 될 수 있다. 버나디나는 “네덜란드는 WBC에 대한 기대가 크다. 팀원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노력하면서 단합하고 있다”며 “결승전에서 한국을 만나면 좋겠다”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A조 네덜란드와 B조 한국이 모두 1~2위에 들어 본선에 진출하면 8강 토너먼트 또는 결승전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다. 유럽의 야구 강국 네덜란드는 최근 두 번의 WBC 모두 4강에 오른 저력의 팀. 특히 조별리그에서 한국을 두 번이나 5-0으로 이겼다. 리턴 매치가 성사되면 한국을 잘 아는 버나디나의 존재가 위협이 될 수 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