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속구로 복수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를 놀라게 했지만 정작 본인은 덤덤했다. 그들을 관광객과 헷갈렸다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 정도로 고우석(25)은 좋은 컨디션 속에서 이번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 WBC 야구대표팀의 클로저 고우석은 지난 17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 스포츠컴플렉스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1차 평가전에 마무리투수로 등판해 1이닝 동안 5타자를 상대하며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투구수는 17개.
20일 대표팀 4일차 훈련에서 만난 고우석은 “컨디션은 생각보다 괜찮다. 사실 지금 시기에 경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작년 스케줄을 확인해보니 투구를 5번 정도 하고 라이브피칭 스케줄을 잡았다. 그래서 걱정이 많았는데 일단 아픈 곳이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순조로운 훈련 적응을 알렸다.
17일 NC전은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 LA 다저스,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 텍사스, 시카고 컵스, 캔자스시티, 보스턴 등 무려 9개 구단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키노 스포츠컴플렉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KBO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7회 등판한 고우석의 150km가 넘는 직구 구속을 보고 일제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대표팀은 간판타자 이정후가 2023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지만 고우석 또한 향후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를 내비친 상태다. 이에 일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이정후뿐만 아니라 고우석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우석은 앞으로 두 시즌을 더 뛰면 FA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덤덤했다. 고우석은 “아무래도 여기가 미국이라 그 사람들이 스카우트인지 관광객인지 헷갈려서 아무 생각 없이 던졌다”라고 웃었다.
고우석은 2년 전 도쿄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악몽을 겪었다. 당시 2-2로 맞선 8회 2사 후 실책성 플레이에 이어 야마다 테츠토에게 결승 3타점 2루타를 허용하며 고개를 숙였다.
고우석은 “그 경기뿐만 아니라 다른 경기 또한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다행히 트라우마가 생기진 않았다”라며 “실력이 부족해서 실수를 한 것이다. 그 이후에도 실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긴장 또한 실력의 일부다. 단지 긴장해서 그랬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라고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긴박한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공이 없다는 생각에 더 많이 노력하게 됐다. 실제로 그 대회를 계기로 더 노력했고, 이제는 스스로 발전했다고 보기 때문에 WBC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싸워보겠다”라고 반등을 다짐했다.
2019 프리미어12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고우석은 도쿄올림픽에 이어 2023 WBC 대표팀까지 승선하며 어느덧 국가대표팀 단골손님이 됐다. 고우석은 지난해 61경기 42세이브 평균자책점 1.48로 KBO리그를 평정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마무리투수로 거듭났다.
고우석은 “처음 대표팀이 됐을 때는 뭔가 설레고 운동하는 시간이 긴장됐는데 지금은 소속팀처럼 편안함이 생긴 것 같다. 이번 대표팀도 첫 턴은 조금 긴장돼서 피곤했는데 실전 경기를 하고 나니 똑같아졌다”라며 “동료들 또한 올 때마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제는 마음이 편하다”라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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