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지난 14일 NC와의 사인&트레이드를 통해 FA 외야수 이명기를 영입했다. FA로 영입한 채은성, 새 외국인 타자 브라이언 오그레디와 함께 외야 남은 한 자리도 외부에서 수혈한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르고 있는 기존의 한화 외야수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주인이 없는 외야 한 자리가 이들의 목표였다. 구단에서도 내부 경쟁의 공간으로 열어놓고 캠프를 시작했지만 2주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팀으로선 전력 보강이지만 자리를 잃을 수 있는 같은 포지션 선수들에겐 비상이 걸렸다. 이를 바라보는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의 메시지도 보다 냉철해졌다. 지난 2021년 부임 후 2년간 외야수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며 여러 선수들을 번갈아 테스트한 수베로 감독이지만 뚜렷한 결과물을 손에 넣지 못했다.
20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솔트리버필드 앳 토킹스톡에서 만난 수베로 감독은 이명기 영입과 관련해 “그는 통산 타율 3할대(.307) 타자다. 지난해 주춤하긴 했지만 그래도 2할6푼(.257)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했다. 외야 뎁스를 더하면서 팀에 부족한 컨택을 보완한 영입이었다”고 말했다.
기존 외야수들이 느낄 수 있는 박탈감이나 동기 부여에 대해 수베로 감독은 “내가 선수라면 그런 감정보다 팀의 메시지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길게 보면 그게 선수들에게도 득이 될 것이다”며 “지난 2년간 (기존 외야수들이)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다 받았다. 이제부턴 스스로 기회를 찾아 자리잡아야 한다. 좌익수, 중견수, 우익수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경쟁해서 자리를 따내야 한다. 지난 2년과 같은 구도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명기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완전한 주전까진 아니다. 이명기가 반등에 성공해 좌익수 자리를 꿰차도 변수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지난해 팀 내 최다 16홈런을 친 김인환이 고전하면 채은성의 1루수 출장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또 외야 한 자리가 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에 기존 외야수들도 기회를 잡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첫 실전이었던 20일 네덜란드 WBC 대표팀과 연습경기에서 장진혁(2안타 1타점), 이진영(1안타 1타점), 유상빈(1볼넷 1도루) 등 외야수들이 존재감을 어필했다.
비단 외야뿐만이 아니다. 이명기에 앞서 채은성, 이태양, 오선진까지 4명의 FA 선수를 선물받은 수베로 감독은 “모두 위닝팀에 있던 선수들이다. 이길 줄 아는 선수들이 팀에 왔고, 지난 2년간 많은 것들을 겪으며 배우고 성장한 기존 젊은 선수들과 융화되는 과정에 있다. 스프링캠프를 거치면서 팀이 완전체가 됐고, 선수들부터 올해 팀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게 보인다”고 기대했다.
베테랑들을 대거 정리하며 전면 리빌딩으로 시작한 수베로 감독 체제에서 한화는 기회의 땅이었다. 전 포지션에 걸쳐 여러 선수들이 기회를 얻었고, 수베로 감독도 당장의 성적보다 미래 육성에 중점을 두고 인내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기회를 쉽고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경쟁이 흐릿해진 리빌딩으로 내부 경쟁력이 약화된 면이 없지 않았다. 기회의 소중함, 간절함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손혁 단장이 FA 및 트레이드 영입에 발 벗고 나섰고, 현장에서 싸울 수 있는 총알을 충분하게 지급했다.
맨땅에 헤딩을 했던 지난 2년의 리빌딩 과정에서 벗어나 수베로 감독도 올해 ‘도약할 시간(Time to Climb)’이라는 테마를 내세웠다. FA 4명 선물로 실탄이 넉넉해진 수베로 감독이 계약 마지막 해 제대로 된 전투 태세를 갖췄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