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위가 좋고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진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의 로컬룰을 지배하는 자만이 챔피언십 라운드가 열리는 미국 마이애미로 향할 수 있다.
한국 WBC 야구대표팀 이강철 감독은 대표팀 훈련이 진행 중인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 스포츠컴플렉스에서 취재진과 만나 WBC 로컬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투수 교체의 귀재인 이 감독이 가장 고뇌에 빠진 로컬룰은 투수의 ‘최소 3타자 상대’ 규정이다. 이번 WBC는 말 그대로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최소 세 타자를 상대해야 마운드에서 내려올 수 있다. 이는 메이저리그가 투수 교체 횟수를 줄이고 경기 시간을 단축시키고자 도입한 제도로, WBC 조직위원회가 이번 대회부터 이를 똑같이 적용하기로 했다.
이 감독은 “투수를 바꾼 뒤 세 타자를 무조건 상대해야한다는 게 머리가 아프다. 제구 난조로 볼넷 3개를 내주면 끝나는 것이다. 여기에 투구수가 많아지면 다음 날 쓰지도 못한다. 이번 대회의 엄청난 변수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단 투수가 해당 이닝을 마쳤거나 갑자기 다쳤을 때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가령 투수가 2사 후 등판해 한 타자를 잡고 이닝을 마치면 다음 이닝에서 다른 투수에게 바통을 넘길 수 있다.
이 감독은 “제구가 조금 부족한 투수는 1사나 2사 후에 등판시키는 플랜을 고려하고 있다. 1사나 2사에 바꿔서 이닝을 끝내면 그 다음 이닝에 투수 바꾸는 건 문제가 없다”라며 “투수 교체 타이밍이 더욱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이 위에서 언급했듯 WBC는 투구수 제한 규정도 있다. 투수의 한 경기 최대 투구수는 연습경기는 49개, 1라운드는 65개, 8강은 80개, 준결승과 결승은 95개이며, 30개 이상 던질 경우 1일 휴식, 50개 이상은 4일 휴식, 2일 연투는 1일 휴식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 최소 세 타자 규정에 투구수 제한까지 겹칠 경우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원활한 마운드 운영을 할 수 있다.
공격의 경우 연장전 승부치기 규정이 변수다. 10회부터 무사 2루 상황에서 이닝이 시작되며, 9회 종료 시점의 타순을 이어서 거행한다. 올림픽처럼 무사 1, 2루가 아닌 무사 2루이기 때문에 번트와 강공 모두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 감독은 “아무래도 승부치기는 후공이 좋을 것 같다. 점수를 먼저 내주면 당연히 번트를 시도하겠지만 첫 타자가 3번타자로 걸리면 또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라며 “그래도 일단은 점수를 내고 봐야하지 않나 싶다. 기본적으로 번트를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선수의 기량이 월등하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대회의 로컬룰을 충분히 숙지하고 이를 적재적소에 적용할 수 있어야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번 대표팀 코칭스태프에게는 선수 지도 외에 또 다른 과제가 생긴 셈이다.
이 감독은 “물론 지금은 선수들의 컨디션이 가장 중요하지만 WBC는 어려운 규정이 너무 많다. 앞으로 이런 부분도 어떻게 해야할 지 신경을 쓰겠다”라고 전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