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등급제는 프로야구 선수협회의 오랜 숙원이었다. 준척급 FA라도 이적시 보상선수 및 보상금으로 인해 발 묶인 케이스가 매년 겨울마다 나왔다. FA 신청 후 팀을 찾지 못한 채 은퇴한 선수가 6명 있었다.
선수협이 오랜 시간 불합리성을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인 끝에 지난 2019년 12월 KBO 이사회가 FA 등급제를 수용했다. 선수 연봉과 나이, 재취득 및 신규 여부에 따라 FA를 등급별로 나눠 보상에 차등을 두면서 족쇄가 풀렸다.
2020년 시즌 후 본격 도입된 FA 등급제 이후로 미계약 선수, 이른바 FA 미아는 사라졌다. 2021년 16명, 2022년 14명으로 FA 신청 선수 30명 모두 계약에 성공했다. A등급 12명 외에도 B등급 13명, C등급 5명 모두 계약했다.
그러나 2023년 FA는 2월 중순이 된 16일까지 미계약 선수가 3명이나 된다. 지난 14일 외야수 이명기가 원소속팀 NC와 계약한 뒤 한화로 사인&트레이드되며 FA 미아 탈출에 성공했지만 투수 정찬헌, 강리호(개명 전 강윤구), 외야수 권희동이 아직 팀을 찾지 못했다. 지금 분위기라면 등급제 도입 이후 첫 FA 미아가 나올 수도 있다.
C등급 강리호는 보상선수 없이 보상금만 1억950만원으로 부담이 크지 않지만 타팀에서 입질이 없다. 25인 보호선수 외 보상선수가 붙는 B등급 정찬헌과 권희동은 원소속팀 키움과 NC에서 사인&트레이드를 허용하며 허들을 낮췄다. 키움은 정찬헌에 대해 보상선수 없이 보상금(5억6000만원)만 받기로 했지만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 권희동은 유력 행선지였던 한화가 이명기를 영입하면서 상황이 더 불리해졌다.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는 샐러리캡, 팀 연봉 총액 상한제도 FA 선수들에겐 악재가 되고 있다. 샐러리캡 도입을 앞두고 여러 팀들이 FA, 비FA 다년 계약으로 대형 투자를 하면서 샐러리캡에 여유 공간이 부족한 팀들이 많아졌다. A급 FA들만큼 큰 비용이 들지 않더라도 샐러리캡 관리의 부담을 안고 영입할 만한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한화로 사인&트레이드된 이명기도 1년 최대 1억원으로 이번 FA 선수 중 최소 금액에 계약했다. 그 흔한 계약금 없이 옵션 5000만원을 제외한 보장 연봉이 5000만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연봉 1억7500만원에서 무려 71.4% 삭감된 조건이지만 당장 팀을 구하는 게 급했던 이명기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머지 3명의 미계약 FA들도 그만큼 눈높이를 대폭 낮춰야 한다. 지난해 연봉은 정찬헌이 2억8000만원, 권희동이 1억1000만원, 강윤구가 7300만원이다.
결국 FA 등급제도 선수들의 완벽한 구제책이 아니라는 게 증명됐다. 선수 가치가 높지 않거나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외면받거나 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드러났다. FA 신청은 권리이고 자유이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선수 몫이다. 다음 FA 선수들에겐 냉정한 자기 객관화와 신중한 판단이 더 중요해졌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