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구단들이 스프링캠프를 떠나고도 소속팀을 찾지 못했다. 프리에이전트(FA) 미아 위기를 극적으로 탈출한 외야수 이명기(36)는 개인 훈련을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한때 자신의 목표였던 '프로선수'를 꿈꾸는 꿈나무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끝내 결실을 이뤘다.
'FA 미아' 위기였던 이명기는 지난 14일 소속팀을 찾았다. 한화와 원 소속팀 NC가 사인 앤 트레이드에 합의하면서 이명기는 새출발을 하게 됐다.
한화는 이명기와 포수 이재용을 받고, NC에 내야수 조현진과 2024년 신인 드래프트 7라운드 지명권(전체 61순위)를 내줬다.이명기의 계약 조건은 1년 최대 1억 원(연봉 5000만 원, 인센티브 5000만 원)이다.
지난 2006년 신인드래프트 2차 8라운드로 SK(현 SSG)에 지명 받은 이명기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교타자다. 통산 타율 3할6리7모(3577타수 1097안타)를 기록 중이다. 300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들 가운데 통산 타율 18위, 현역 타율 10위로 컨택 능력 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다.
2017년 KIA로 트레이드된 이후 곧바로 우승의 주역이 됐고 2019년 NC로 트레이드된 이후 2020년 다시 통합우승 멤버가 됐다. 이명기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우승이 있었다.
하지만 2021년 원정 숙소 방역 수칙 파문으로 커리어가 꼬였다.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지난해 복귀했지만 94경기 타율 2할6푼(300타수 78안타) 23타점 36득점 5도루 OPS .648의 성적에 머물렀고 FA 자격을 취득했다.
FA 권리를 행사한 이명기는 C등급 FA로 분류됐다. 직전 연도 연봉 150%의 보상금만 지불하면 되는, 이적에 제약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NC는 이명기와 함께 FA가 된 외야수 권희동을 모두 붙잡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사인 앤 트레이드 가능성은 열어 놓았다. 그러나 타구단의 영입 의사도 미온적이었다. 시장의 냉기를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결국 이명기는 해를 넘기고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어도 유니폼을 입지 못한, FA 미아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끝내 계약을 맺었다. FA 선수라기에는 초라하고 지난해 연봉 1억7500만 원보다 1억2500만 원이나 삭감된 5000만 원에 계약을 했지만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이 먼저였다.
계약 발표 직후 연락이 닿은 이명기는 "어제(13일) 계약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계약이 돼서 다행이다.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계약이 됐다는 소식을 들어서 괜찮았다"고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초조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지난 시간들이었다. 그는 "그래도 1월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스프링캠프를 가야 할 시기인데 운동을 하면서 이런 적이 처음이었다"라면서 "캠프를 떠나면서 '이제 그만둬야 하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1월에는 전남 영암에서 개인 훈련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함께 훈련을 하던 중학생 꿈나무 선수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FA 이전에 중요했던 본질을 다시 깨달았다. 희망을 잃지 않았던 계기였다.
그는 "집이 있는 인천에서는 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들이 기술훈련을 하고 있는 영암에서 훈련을 하고 어린 친구들도 봐주고 있었다"라면서 "어린 중학생 선수들이 많이 물어봤다. 기본기를 알기 쉽게 설명을 해줘야 했는데 그러면서 성심성의껏 얘기해줬다. 얘기를 하다 보니까 제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선수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모두 '프로 선수가 되는 거에요'라고 했다. 나도 저 나이때는 목표가 프로 선수였다. 그래서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나 역시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다"라고 되돌아봤다.
계약이 됐고 이제는 다시 유니폼을 입고 스파이크를 동여맨다. 15일 곧장 한화 2군 캠프가 열리고 있는 일본 고치로 떠난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NC의 2번타자로 좋은 인상을 받았던 선수였다"라며 이명기의 합류를 반겼다.
이명기는 원점에서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그는 "야구를 다시 하게 됐지만 이제는 잘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시즌이 되면 나 역시도 어필을 해야 한다. 제가 가진 한도 안에서 최대한 어필을 해야한다"라고 했다.
외야수 채은성, 투수 이태양, 내야수 오선진에 이어 한화의 4번째 FA 선수로 합류하게 된 이명기다. 젊은 한화에서 베테랑의 역할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한화는 나에게 감사한 팀이다. 팀에 도움이 될만한 모든 것들을 잘해야 할 것 같다"라며 "우선은 야구를 잘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해 부진했던 모습을 만회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또 많이 움직여야 할 것 같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명기는 "창원에서 함께 우승도 했고 좋은 기억이 많았다. 많이 사랑을 받아서 감사했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라며 NC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