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대전에서 치러진 한화 마무리캠프. 공식 훈련이 끝나면 한 사내의 나홀로 프리 배팅이 시작됐다. 경쾌한 타구음에 외야로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 이를 지켜보던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도 감탄하며 “우중간, 좌중간으로도 쳐보라”고 주문했다. 당시까지 불펜 포수였던 김석훈(23)이 그 주인공이었다.
지난해 투수들의 공을 받아주는 불펜 포수로 한화에서 1년간 일한 김석훈은 틈틈이 개인 운동으로 선수 테스트를 준비했다. 수베로 감독도 그의 타격을 보곤 “스윙이 정말 좋다. 왜 불펜 포수를 하고 있냐?”고 물어볼 정도로 타격 재질이 남달랐다. 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김석훈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지난달 중순 한화와 육성선수 계약을 맺고 정식으로 프로 선수가 된 것이다. 등번호 113번을 달고 일본 고치에서 치러지고 있는 퓨처스 스프링캠프에도 합류했다.
프로 선수가 되기까지 김석훈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청주고 시절 외야수로 뛰었지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2019년 강릉 영동대에 진학한 뒤 “너의 체형(177cm, 95kg)이나 파워, 어깨를 봤을 때 포수가 좋겠다”는 김철기 감독 감독 권유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청주고 시절 잠깐 포수를 봤지만 단기간 기량이 늘기 어려운 포지션이었다. 2020년 1년간 휴학하면서 포수 출신 강진규 코치에게 집중 지도를 받았다. 포수로서 기본을 다진 시간이었다.
2021년 복학한 김석훈은 그러나 포수보다 지명타자나 대타로 많이 나왔다.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팀에 그보다 좋은 포수가 둘이나 있다 보니 포수로는 거의 모습을 비추지 못했다. 제한된 기회 속에서도 23타수 11안타 타율 4할7푼8리 1홈런 11타점 OPS 1.204로 활약했지만 드래프트에서 외면을 받았다.
이때 김철기 감독의 추천으로 한화 불펜 포수에 지원해 들어갔다. “잘하면 선수로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에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캠프부터 시즌 때까지 쉼 없이 이어진 불펜 포수 일을 하면서도 개인 운동을 병행했다.
매일 눈앞에서 펼쳐지는 프로야구가 김석훈에게 큰 자극이 됐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사회 생활을 하는 것도 처음이지만 제 꿈인 프로야구가 바로 앞에 있는데 옆에서 서포트만 하는 게 답답하기도 하고,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너무 부러웠다”는 게 김석훈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독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1년간 불펜 포수로 일하면서 고된 시간을 보냈지만 보고 배운 것도 많았다. 그는 “TV로 보는 것보다 눈앞에서 보니 야구가 훨씬 잘 보였다.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잘 치는지, 또 포수로서 2루 송구나 미트질도 옆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주어진다고 했다. 한화는 안진, 장규현 그리고 올해 허인서까지 포수들이 줄줄이 군입대했다. 포수 자리가 비면서 김석훈에게 기회가 왔다. 평소 그의 성실함을 구단이 좋게 봤고, 수베로 감독과 코치진으로부터 타격 자질을 인정받으면서 육성선수로 기회를 잡았다.
음지에서 같이 고생한 지원 스태프들부터 선수들까지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김석훈은 “다들 ‘열심히 했다. 고생했다’면서 축하해주셨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진짜 많았지만 꿈이 바로 앞에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선수를 꿈꾸는 다른 불펜 포수나 스태프들도 힘들다고 포기 안 했으면 좋겠다. 끝까지 후회 없이 해봤으면 좋겠다”며 “이제는 불펜 포수가 아닌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1차 목표는 1군에 올라가는 것이고, 2차 목표는 상위 타선에 자리잡는 것이다. 그동안 (최)재훈이형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도움받았다. 이제는 (같은 포지션인) 재훈이형을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팬분들께 오래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큰 꿈을 그렸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