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더스 우승의 시작점 JRTC
바야흐로 스프링 캠프가 한창이다. 미국으로 간 팀 대부분은 애리조나에 짐을 풀었다. 거리도 괜찮고, 연습 게임할 상대도 있다(여러 팀이 갔으니까). 반면 유일하게 플로리다를 고집하는 구단이 있다. 전년도 챔프 SSG 랜더스다. 비행기를 몇 시간 더 타야 하는 곳이다. 시차도 3시간이 더 난다. 그런 곳으로 10년 넘게 사서 고생이다.
먼 곳까지 구단주가 찾아갔다. 보도자료를 통해 뉴스가 쏟아진다. 선수단을 위한 푸짐한 만찬이 화제였다. 캐나다산 최상급 랍스터와 쇠고기, LA 갈비 등 다양한 메뉴가 제공됐다. 양념이나 재료를 한국에서부터 공수해 현지에서 담근 김치도 나왔다. 정성에 감사하는 선수들의 멘트가 전해진다.
훈련장 이름은 재키 로빈슨 트레이닝 콤플렉스(JRTC)다. 예전에는 다저 타운(Dodger Town)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2008년까지 다저스가 시즌을 준비하던 훈련장이다. 애리조나로 캠프를 옮기며 시(市)가 관리했다. 명칭도 몇 차례 달라졌다. 베로비치 스포츠 빌리지, 히스토릭 다저 타운으로 불렸다.
랜더스가 이곳을 쓰는 이유가 있다. 시설에 대한 만족감이 높다. 또 지난 해 우승으로 애정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이곳은 KBO 리그와 깊은 연관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라소다의 만류에도 야간 훈련을 강행한 김영덕 감독
41년 전이다. 프로야구가 첫 걸음을 내디뎠다. KBO는 해외의 인사들을 초청해 리그 운영에 대한 조언을 청취했다. 다저스 구단주였던 피터 오말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방한 기간 중 삼성 라이온즈 이건희 구단주와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폭넓은 지원을 약속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1985년 2월. 라이온즈 선수단 55명이 김포공항 출국장에 모였다. 첫 미국 전지훈련을 위해서다. 행선지는 플로리다 베로비치다.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20시간 가까운 장거리 여행이다.
힘들게 도착한 곳이 다저 타운이다. (당시) 정규 규격 야구장 3개와 배팅 훈련장 8개, 웨이트 시설, 수영장 등이 갖춰졌다. 오말리 구단주가 보내준 코치 4명이 직접 삼성 선수들을 지도했다. 투수, 타격, 수비, 주루에 대한 기본기에 주력했다.
그런데 이들은 문제가 많았다(라이온즈 시각에서는). 설렁설렁. 대충대충 노는 것 같았다. 선수들과 장난치고, 농담하고. 그런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수업도 별로 새로운 게 없었다. 뻔한 기본기였다. 주로 ‘왜 그래야 하나’ 하는 것들이다. 그나마도 점심 무렵이면 하루 스케줄이 끝이다. 김영덕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는 영 못 마땅한 표정이다.
왜 아니겠나. 그 전까지 해외 전훈이라면 일본이나 대만이었다. 일정도 재래식에 익숙했던 시절이다. ‘본고장이라고 잔뜩 기대하고 왔더니 뭐 이래.’ 당장 이런 불만 나오기 마련이다. 결국 김영덕 감독은 야간 훈련을 지시했다. 훤하게 조명을 키고 밤 늦도록 선수들을 굴렸다. 토미 라소다 감독이 극구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라소다 감독이 손사래 친 까닭을 깨달았다. 무리하지 말라는 뜻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벌레였다. 바다가 가깝고, 습한 지역이다. 밤이면 온갖 종류의 날벌레들이 바글거렸다. 환한 조명을 보고 모여들어 선수들을 괴롭혔다. 두터운 땀복까지 뚫어버리는 플로리다 모기의 극성에 두 손 들고 말았다.
김시진에게 홈런 치고 미안해 한 허샤이저
캠프 후반은 실전 모드다. 그 때 라인업은 기라성 같았다. 김시진, 김일융이 원투 펀치로 활약할 때다. 야수 쪽으로도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 김용국, 이해창 등 올스타급들로 이뤄졌다. 아마추어 세계대회를 휩쓸던 멤버들이다. ‘이 정도면 비벼볼 만하지 않겠어?’ 은근한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첫 경기부터 산산조각 났다. “땅볼을 잡을 수가 없었다. 타구 스피드가 차원이 달랐다. 너무 강하고 빨라서, 내 앞으로 오는 게 겁날 정도였다.” 한 내야수의 기억이다. 반대로 우리가 치는 건 내야를 넘기기 어려웠다. 마이너리그 투수도 어려웠다.
어느 날 연습경기 때다. 김시진이 마운드에 섰다. 타석에는 호리호리한 체격이다.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타자였다. 그런데 초구를 까마득히 넘겨버렸다. 그리고는 베이스를 돌면서 왠지 멋쩍은 표정이다. 무슨 일인지, 다저스 덕아웃도 낄낄거리고 있다.
알고 보니 홈런 친 타자는 투수였다. 오렐 허샤이저라는 이름이다. 3년 뒤 59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한 전설이다.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멀리 아시아에서 온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는 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 팀의 에이스라는 소리를 듣고 무척 미안했다.”
김시진은 다저 타운과 악연이 많다. 며칠 뒤 유료관중이 입장한 경기가 열렸다. 다저스 타자들은 벌벌 떨었다. 긴장한 투수의 공이 어디로 날아들 지 몰라서다. 중심타자 페드로 게레로가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튄 공이 관중석까지 날아갈 정도였다. 결국 이 경기에서도 투수(제리 로이스)에게 3점 홈런을 맞았다.
스코어 0-7. 무참한 패배였다. 현지 미디어가 홈런의 주인공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국팀이 더블A 수준 정도라는데.’ 그러자 로이스가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내가 더블 A에 있었던 게 15년도 넘었다. 그 쪽을 가르친 코치들에게 물어보라.”
라소다 감독이 선물한 책 한 권
딱한 첫 경험이다. 하지만 다저 타운은 선물이었다. 라이온즈는 새로운 팀이 됐다. 야구에 접근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전략적으로도 발전했다. 당시만 해도 처음 보는 작전들이 많았다. 지금은 흔한 1, 3루 (딜레이드) 더블 스틸도 이 때 삼성이 첫 선을 보였다. 상대는 어떻게 대비하는 지 몰라 절절 매야 했다.
투수진도 업그레이드됐다. 김일융은 새로운 무기를 얻었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스크류 볼이다. 그걸로 다승왕(25승)에 올랐다. 덕분에 팀 승률이 7할을 넘겼다(0.706). 한국시리즈 없이 전후기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힘겨운 전지훈련이 끝났을 때다. 라소다 감독은 떠나는 손님들에게 책 한권을 선물했다. ‘다저 웨이(Dodger Way)’라는 제목이었다. 타격, 수비, 주루 등 야구 전반에 관한 기술서다. 훗날 번역서까지 출판됐다. 한국의 많은 팀들이 교과서처럼 사용했다.
류중일 감독의 삼성 시절이다. 재임 후 두번째 챔피언(2012년)에 올랐다. 한국시리즈 때 결정적 순간을 넘긴 덕분이다. 번트 시프트, 그리고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가 빛을 발했다. 류 감독은 이 때 ‘다저 웨이’를 떠올렸다.
“다저스 같은 명문 팀은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교본이 있다. 세월이 흐르고, 야구가 변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그걸 응용할 수 있도록 세밀한 내용이 담겨 있더라. 이걸 바탕으로 수정과 보완을 거쳐 삼성만의 수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류중일 전 감독)
고작 인구 1만 6000명의 작은 도시 베로비치에서 시작된 역사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