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최초의 일본인 선수였던 투수 이리키 사토시가 교통사가로 사망했다. 향년 55세.
‘스포츠닛폰’을 비롯해 일본 언론은 지난 11일 이리키의 사망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지난 10일 밤 9시50분쯤 일본 미야자키현 미야코노조에서 운전을 하다 교차로에서 다른 승용차와 충돌하며 사고가 났고, 병원에 이송됐지만 2시간 뒤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리키가 마지막으로 몸담은 일본프로야구 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11일 고인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사인은 교통사고의 의한 중증 두부 외상으로 발표됐다.
1967년 6월 3일생 우완 투수였던 이리키는 고교 졸업 후 사회인야구에서 뛰다 1989년 드래프트 6순위로 긴테쓰 버팔로스(현 오릭스)에 입단했다. 이후 히로시마 도요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거치며 2012년까지 일본에서 12시즌 통산 214경기(605⅔이닝) 35승30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4.25 탈삼진 422개를 기록했다.
1999년 요미우리로 이적하면서 5살 터울의 친동생인 이리키 유사쿠 현 오릭스 버팔로스 투수코치와 한 팀이 됐다. 요미우리 구단 사상 첫 현역 형제 선수로 화제를 모았다. 이어 2001년 야쿠르트로 다시 팀을 옮겨 개인 최다 10승을 거두며 평균자책점 2.85로 활약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해 일본시리즈에서도 3차전 선발로 5이닝 1실점 승리투수가 되며 야쿠르트 우승에 힘을 보탰다.
2002년을 끝으로 일본을 떠나 한국에 왔다. 2002년 12월23일 총액 15만 달러에 두산 베어스와 계약하면서 KBO리그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됐다. 2003년 두산 마무리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6월부터 선발로 보직을 바꿔 1차례 완봉 포함 리그 최다 5차례 완투를 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39경기(20선발) 159이닝을 던지며 7승11패5세이브 평균자책점 3.74 탈삼진 87개.
그러나 두산과 재계약에 실패한 뒤 2004년 대만프로야구 라뉴 베어스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 근황이 거의 알려져지 않았는데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까지 미야코노조에서 간병인으로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KBO리그는 2003년 이리키와 같은 해 롯데에 온 투수 모리 가즈마에 이어 2006년 SK 내야수 시오타니 가즈히코, 2008년 히어로즈 투수 다카쓰 신고, 2009~2011년 SK·삼성 투수 켄 카도쿠라, 2010년 LG 투수 오카모토 신야 등 6명의 일본인 선수들이 뛰었다. 그러나 2011년 시즌 중 방출된 카도쿠라를 끝으로 12년째 일본인 선수가 없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