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박스 남았는데 왜 눕지?” 웃으며 잡도리하는 이승엽 스타일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3.02.09 16: 00

[OSEN=백종인 객원기자] 고즈넉한 오후다. 그라운드엔 햇볕도 적당하다. 와중에 몇몇은 정신없다. 1대1 토스 배팅이 한창이다. 그 중 한 조에 눈길이 모인다. (공) 올려주는 사람이 감독인 탓이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설렁설렁 하겠나. 스윙 하나 하나에 온 힘을 쏟는다.
반대로 토스는 점점 빨라진다. 쉴 새 없이 (배트를) 돌려야 한다. 200개들이 한 박스를 간신히 마쳤다. 타자는 숨이 턱에 닿는다. 배트 잡을 힘도 없다. 허리도 꺾인다. KO 직전이다.
그 때였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감독이 한 박스를 더 들고 온다. 훈련 상대는 어이없는 표정이다. 급기야 등을 돌린다.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그런 모습이다. 물러설 상대가 아니다. 꾸짖듯, 달래듯. 한마디가 돌아온다. “내일 쉬잖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기다.”
누구 앞이라고. 다시 호흡을 모은다. 그리고 죽음 같은 두번째 박스다. “오케이, 오케이. 왼쪽 무릎은 막고, 허리는 더 틀어.” 잔소리인지, 코칭인지. 쉼 없는 주문이다. 몸과 머리가 모두 죽을 지경이다. 감독이 또 한마디 한다. “이렇게 해야 티 배팅이 달라지고, 연습 배팅이 달라지는 거야. 실전에서도 달라지고.”
유튜브 채널 베어스 TV
잠시 물 한 잔의 휴식이다. 그리고 막판 스퍼트. 또다시 정신없는 빠르기다. 거친 숨소리, 그리고 간혹 고통을 참는 단말마 비명만 들린다. 급기야 추가 200개도 끝나간다. 이제 서로가 절박한 외마디만 남긴다.
“하나만 더” (날 잡은 감독)
“감독님~” (잘못 걸린 타자)
“다 왔다”
“감독님~”
“한 박스 더 할까?”
“감독님~”
노란 통이 비었다. 토스도 중단된다. 타자는 앞으로 쓰러졌다. 감독은 시큰둥, 본 척 만 척이다. 아무렇지 않게 한 마디 한다. “한 박스 더 남았는데…. 왜 눕지?” 지켜보던 이들도 할 말을 잃는다. 아직도 양손에 공을 쥔 감독의 대사다. “아니 그런데 이게 200개 넘나 보네.” 다른 스태프의 대답이다. “예, 저게 더 많습니다.”
지난 10월 25일 마무리 캠프 때 풍경이다. 두산의 유튜브 채널 베어스 TV가 업로드한 클립이다. 주연은 외야수 김대한(23)이다. 2019년 1차 지명 입단이다. 지난 해 51경기에서 0.240/0.315/0.763(타출장)을 기록했다. 단독 조연은 이승엽 감독이다. 자신이 꼽은 기대주 한 명을 웃으면서 잡도리하는(?) 장면이다. 마치 김성근 치하의 이글스가 생각난다.
유튜브 채널 베어스 TV
OSEN DB
선수 시절 얘기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천재형이냐, 아니면 노력형이냐.’ 잠시 생각하더니 이런 답을 내놨다. “둘 다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신 주어진 훈련량은 반드시 지킨다. 100개면 100개, 200개면 200개. 한번도 그걸 어긴 적은 없다.”
하지만 야신의 생각은 다르다. 김성근 전 감독이 한화 시절 선수들의 태만을 질타하며 이런 얘기를 남겼다. “이승엽을 봐라. 일본 지바 롯데에 있을 때 유심히 겪어봤다. 정말 열심히 하더라. 경기 전부터 500~600개씩 배팅을 친다. 부족한 부분이 해결될 때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래서 슬럼프를 극복하고 성공한 것이다.”
김제동의 회고다. 아시다시피 절친이다. 집에 데려가 밥도 함께 먹는 사이다. 상을 차려준 어머니가 국민 타자의 식사량에 깜짝 놀란다. “야야, 소는 먹여도, 자는 못 먹이것다.” 그런 말을 남겼다.
그렇게 아끼는 동생이 발렌타인 치하에 있을 때다. 플래툰 공화국에서 핍박이 심했다. 개막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다. 위로 차 일본으로 만나러 갔다. “호텔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깨서 창 밖을 보니 삭발한 승엽이가 혼자서 스윙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 새벽에…. 도저히 못 보겠더라구요. 엄청 많이 울었습니다.” 그 해 빡빡이는 30홈런을 때려냈다.
OSEN DB
취임 석 달이 지났다. 10~11월을 마무리 훈련으로 보냈다. 몇몇 고참을 제외하고 모두 참여시켰다. 자신도 이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지금은 호주에서 담금질이 한창이다. 기간은 40일이다. 하지만 50~60일치 훈련량을 소화한다는 목표다. 연습구를 1만 2000개나 가져갔다. 예년보다 5000개는 많은 양이다.
두 차례 캠프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강행군 또는 지옥 훈련이다. 강도와 양을 모두 강조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빡빡하다. 이렇게 힘든 건 8년 만이다. 그런 소리도 팀내에서 나온다.
선수시절에는 순둥이 이미지였다. 싫은 소리 못하는, 둥글둥글한 성격 탓이다. 그래서 보는 이들은 걱정이다. 사람 좋으면 꼴찌라던데. 코치 경험도 없다는데. 팀은 제대로 꾸려가겠나. 거칠고 외로운 자리를 버텨내겠나. 그런 수군거림. 없다면 거짓말이다.
무거운 자리에 앉았다. 막중한 책임을 맡았다. 헐거우면 단단히 조이고, 게으르면 매섭게 다그쳐야 한다. 때로는 냉정하고, 때로는 가혹해야 한다. 순하고 부드러운 맛도 좋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맵고, 쓰고, 떫은 맛도 모두 견뎌야 한다. 지금은 그런 변신의 시간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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