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대표팀을 이끄는 이강철 KT 감독은 지난해 9월13일 대전 한화전에서 상대 투수 윤산흠(24)의 투구에 놀랐다. 당시 6회 1사 1,2루에서 올라온 윤산흠은 수비 실책이 겹쳐 만루 위기에 처했지만 장성우와 박경수를 삼진 처리하며 실점 없이 막았다.
이튿날 이강철 감독은 “볼이 너무 좋아서 타자들이 못 쳐도 창피하지 않다고 하더라. 투피치인데 제구가 좋아졌다. 처음 봤을 때는 투구폼도 크고, 커브의 각이 컸는데 지금은 폼도 작아지고 커브가 슬러브처럼 빠르게 들어온다. 직구와 비슷한 터널링이라 타자들이 타이밍 맞추기 어려워졌다. (중심을) 앞으로 끌고 넘어와 던지는 직구 힘도 좋다. 쉽지 않은 볼이다”고 극찬했다.
지금은 해체된 전북 고창의 영선고 출신 우완 투수 윤산흠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뒤 독립리그 파주 챌린저스에서 뛰다 2019년 두산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2년간 2군에만 머물다 방출되면서 다시 독립리그로 돌아간 윤산흠은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소속이던 2021년 6월 한화와 육성선수 계약을 맺고 두 번째 기회를 잡았다. 그해 1군 데뷔의 꿈을 이루며 5경기를 던졌다.
데뷔 2년차가 된 지난해 1군에서 존재감을 알렸다. 37경기(33⅔이닝) 1승1패3홀드 평균자책점 2.67 탈삼진 46개로 활약했다. 최고 150km 강속구와 너클커브로 가공할 만한 탈삼진 능력을 보여줬다. 30이닝 이상 던진 투수 142명 중 9이닝당 탈삼진 2위(12.3개)였다. 177cm, 68kg 작은 체구에도 온몸을 뒤로 젖혀 힘을 싣는 투구폼과 긴 머리로 팬들에게 ‘낭만 투수’라고 불렸다. 연봉도 지난해 3100만원에서 올해 4800만원으로 54.8%(1700만원) 상승했다.
지난해 이맘때 퓨처스 캠프에서 시즌을 준비하던 윤산흠은 올해 1군 캠프에 포함돼 미국 애리조나 메사로 갔다. 윤산흠은 “미국에 가는 건 처음이다. 날이 따뜻한 곳에 가서 공 던질 생각을 하니 너무 좋다”며 “기분이 좋긴 좋지만 여기서 더 잘해야 개막전 엔트리에 들 수 있다. 만족하기에는 한참 멀었다. 지난 시즌 좋았던 부분도 있었지만 단점도 명확하게 보였다”고 이야기했다.
FA와 트레이드, 신인 등 경쟁 투수들이 가세한 만큼 윤산흠도 스스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신경쓰고 있다. 지난해 9이닝당 8개에 달한 볼넷을 줄이는 게 과제. 윤산흠은 “제일 큰 문제는 볼넷이다. 많이 줄여야 한다”며 “두 번째로 상대 타자 성향에 따라 승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타자에 따른 볼 배합도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1군 스프링캠프이고, 미국행이지만 윤산흠은 오버 페이스를 경계하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차근차근 보여드리고 싶다”며 “올해 아프지 않고 개막부터 1군 엔트리에 들어 잘 마무리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윤산흠은 지난해 시즌 막판 트레이드마크였던 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머리 사이즈가 작아 공을 던질 때마다 모자가 땅에 떨어진 탓이다. 윤산흠은 “주변에서 모자가 자꾸 벗겨지는 게 위험해 보인다고 말씀해주셔서 잘랐다. (머리를 자른 뒤) 모자가 떨어지지 않더라”며 웃은 뒤 “올해는 더 작은 사이즈의 모자가 새로 나와 머리를 길러도 괜찮을 것 같다”고 다시 장발을 예고했다. 겨우내 뒷머리를 기르면서 ‘낭만 투수 시즌2’를 예고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