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만 오면 좋은 기운을 받았던 ‘국민타자’ 이승엽이 감독으로 변신해 그 기운을 두산 선수단에 전하려 한다.
두산 베어스는 2월 1일부터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 국제 스포츠파크 베이스볼센터에서 2023시즌 스프링캠프를 치른다. 지난 30일 시드니에 입성한 두산은 31일 오전 간단한 자율훈련을 실시하며 캠프 시작 전 컨디션을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시드니 계절은 낮 최고 기온이 27~32도 사이인 여름으로, 햇볕이 강한 정오 전후를 제외하고 몸을 만들기에 최적의 날씨를 자랑한다.
작년 10월 두산의 제11대 감독으로 부임한 이승엽 감독에게 호주는 현역 시절 그야말로 ‘약속의 땅’이었다. 어떻게 보면 국민타자를 배출시키고, 한국 야구 부흥의 서막을 열었던 도시가 바로 이 곳 시드니다.
지난해 이천 마무리캠프에서 만난 이 감독은 1997시즌 생애 첫 홈런왕 등극 비화를 공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감독은 “과거 1996시즌을 마치고 12월 개인 운동을 할 수 있어서 당시 젊은 선수들 위주로 호주 시드니에서 훈련을 한 뒤 다음해 홈런왕을 차지했다. 호주는 행운이 따르는 곳이다. 야구 선수들은 운을 제법 많이 따지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경북고를 나와 1995년 프로에 데뷔한 이 감독은 2년차인 1996시즌 첫 3할 타율(3할3리)를 달성했지만 홈런이 9개에 불과했다. 이에 따뜻한 호주로 떠나 장타력을 늘리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실시했고, 1997시즌 타율 3할2푼9리와 함께 32홈런을 치며 데뷔 3년 만에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 감독이 호주를 떠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던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감독은 4년 뒤인 2000년 호주 시드니에서 또 다른 역사를 썼다. 당시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승선, 일본과의 3, 4위 결정전에서 0-0이던 8회 2사 2, 3루서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2타점 결승 2루타를 치며 한국 야구에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지난 31일 방문한 시드니 블랙타운 베이스볼센터에는 당시 영광이 동판을 통해 그대로 남아있었다. 두산이 훈련하는 메인구장 중앙 출입구 쪽 기둥에 동메달을 따낸 24명의 이름이 한 명씩 새겨져 있었다. 이승엽 감독을 비롯해 김한수 두산 수석코치, 박진만 삼성 감독, 김기태 KT 2군 감독, 이병규 삼성 수석코치 등의 이름이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금메달 미국, 은메달 쿠바 대표팀 명단도 동판으로 제작돼 각자 한 기둥씩 차지하고 있었다.
두산은 블랙타운 베이스볼센터의 3개 구장을 이용한다. 호주프로야구 시드니 블루삭스의 홈구장으로 쓰이는 메인구장과 외야 뒤쪽 2개 구장을 추가로 활용한다. 외야 구장 한편에는 투수 3~4명이 동시에 투구할 수 있는 불펜이 설치됐고, 구장 곳곳에 ‘2023 두산베어스 전지훈련’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제 이 곳에서 2월의 첫날부터 34일 동안 이승엽 감독의 첫 캠프가 열린다.
캠프를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스토브리그서 사령탑 교체에 이어 FA 최대어인 양의지를 데려왔고, 지도자가 처음인 이 감독을 보좌할 코치진을 노련하고 실력 있는 지도자로 꾸렸다. 이제 감독에게 ‘약속의 땅’이었던 호주 시드니에서 선수들이 그 기운을 받아 뉴 베어스 왕조를 구축하려 한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