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투수 오승환(41)은 2005년 프로 입단 후 지난해까지 18년째 변함없이 특급 마무리로 활약했다. 올해도 마무리를 맡을 것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 야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뛰어난 구위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오승환은 2006년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현역 선수로 뛰고 있다. 대단함 그 자체다.
2006년 WBC 1회 대회. KBO는 김인식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하고, 당시 해외파와 KBO리그 최고의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렸다.
박찬호(샌디에이고), 구대성(뉴욕 메츠), 김병현(콜로라도), 김선우(콜로라도), 봉중근(신시내티), 서재응(LA 다저스), 최희섭(LA 다저스) 등 메이저리거 7명과 일본프로야구의 이승엽(요미우리)이 해외파로 합류했다. 오승환은 배영수(삼성) 손민한(롯데) 김종국(KIA) 박진만(삼성) 등과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5년 데뷔 첫 해 돌직구를 앞세워 ‘트리플 더블’(10승-10홀드-10세이브 이상) 진기록을 세운 오승환은 2006년 3월에 열린 WBC 대표팀에도 승선했다.
오승환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인상적인 구위를 선보였다. 미국 대표팀의 포수 마이클 배럿은 오승환의 공을 상대하고 “마치 시속 110마일(약 177km)을 던지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 당시 오승환은 140km 중반의 구속이 나왔지만 볼끝 움직임이 좋아 타자가 느끼는 체감 스피드는 더 대단했다.
오승환은 2009년 2회 대회에도 출전했고, 2013년과 2017년 3~4회 대회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했다. 특히 2017년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4회 대회 1라운드 대만과 경기에서 2이닝 무실점 완벽투가 인상적이었다.
대만전 8-8 동점인 9회말 무사 2루 끝내기 위기에서 등판한 오승환은 삼진-삼진-뜬공으로 위기를 넘겼고, 연장 10회말도 무실점으로 막아내 11-8 승리를 지켜냈다. 한국은 2패로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오승환의 역투를 발판으로 대만에 승리를 거두며 1승(2패)의 체면치레는 했다.
오승환은 WBC 1~4회 대회에 김태균(전 한화)와 함께 모두 출전한 ‘유이'한 선수다. 그리고 1회 대회 4강 위업을 달성한 대표팀 멤버 중에서 지금까지도 프로 선수로 뛰고 있는 선수는 오승환이 유일하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은퇴했다. 당시 대표팀 선수였던 김종국, 박진만, 이승엽은 프로야구 감독으로 변신해 있다.
오승환은 해외로 진출해 일본프로야구(2014~2015년) 한신 타이거스와 미국 메이저리그(2016~2019년) 세인트루이스, 토론토, 콜로라도에서 활약했다. 2020년 삼성으로 돌아와 30대 후반 나이에도 마무리 보직을 맡아 지난해까지 이어왔다.
지난해 살짝 위기도 있었다. 57경기(57이닝)에서 6승 2패 2홀드 31세이브 평균자책점 3.32를 기록했다. 시즌 도중 밸런스를 잃어 부진(블론세이브 7개)하기도 했지만, 발목 부상을 안고도 마운드에 올라 던졌다. 7월 흔들렸으나 8~9월에는 ‘끝판대장’ 위용을 되찾았다.
KBO리그에서 통산 610경기 37승 19패 15홀드 370세이브 평균자책점 1.93을 기록 중이다. 프로 19시즌째를 앞두고 있는 오승환은 일찌감치 일본 오키나와로 건너가 개인 훈련을 하고 있다. KBO리그 통산 세이브 1위인 그가 30세이브를 추가한다면 400세이브 대기록 이정표를 남기게 된다.
한편 오승환은 지난해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책임의식으로 올해 연봉을 구단에 백지 위임을 했는데, 최근 삼성 구단은 오승환의 연봉을 14억 원(옵션 3억 원 별도)으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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