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 5월 어느 날이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기억에 남는 멘트를 남겼다. 투수 기용에 대한 자책이다. “장민재는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잘 던지고 있다. 조금 더 빨리 선발로 쓰지 못한 건 내 실수다.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이례적인 일이다. 대단한 에이스급도, 엄청 눈부신 성적도 아니다. 땜빵 선발 4경기를 뛸 때였다. 승리 없이 1패만 당했다. 그런 투수에 감독이 사과까지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당사자가 민망하다. “감독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그동안 좋은 공을 던지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작년(2021년)에도 너무 오랫동안 2군에 있었다. 절대 감독님 오판이 아니다.” (장민재)
시즌을 추격조로 시작했다. 지고 있거나, 선발이 무너질 때만 등판했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겼다. 외국인 투수들이 연달아 이탈한 탓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맡은 일을 잘 해냈다. 막판까지 꾸준하고 성실했다. 7승 8패, ERA 3.55다. 2009년 입단 후 최다승이다. 126.2이닝 역시 최고 성적이다.
# 시즌 막판이었다. 순위 싸움이 치열했다. 이글스는 관심 대상도 아니었다. 덕아웃 화제는 애써 희망을 찾는다. “내년(2023년) 개막전 선발은 누가 좋을까?” 괜한 화두다. 그나마 영건들이 많아 다행이다. 김민우, 문동주, 남지민 같은 이름들이 떠돈다.
그 때였다. 수베로 감독이 정색한다. “장민재를 빼면 안된다.” 그리고 톤을 더 높인다. “올해 우리는 무척 어려운 시즌을 보냈다. 외국인 투수 4명이 모두 완주하지 못했다. 김민우는 기복이 좀 있었고, 문동주도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다. 우리 팀에서 가장 꾸준했던 것은 장민재였다. 선물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수베로 감독은 개막전 선발은 국내 투수에게 맡긴다는 원칙이다.)
# 6월의 일이다. 야구판이 발칵 뒤집혔다. 대전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다. 판정에 불만을 품은 하주석이 헬멧을 내던졌다. 여기에 맞아 코치 한 명이 다칠 뻔했다. 출장 정지 10경기를 받았다.
주장이 빠지자 대행이 필요했다. 감독은 장민재를 지목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다. 우리의 폭풍 같은 2주를 잠재워줄 수 있는 선수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기간 동안 암흑 같은 10연패도 막아냈다(6월 24일 삼성전 5.1이닝 무실점).
# 속칭 ‘류현진 아카데미’로 불리는 게 있다. 매년 이맘 때 차려지는 캠프다. 주로 장민재, 이태양과 후배 1명의 4인 구성이다. 일본 오키나와, 또는 제주도에서 2주 남짓을 보낸다. 비용 일체는 아카데미 원장이 부담한다. 후배들을 위한 마음 씀씀이다.
그런데 올해는 취소됐다. 대장의 팔꿈치 재활 탓이다. 그러자 수석 수강생이 직접 나섰다. 장민재가 선배에게 받은 것을 비슷하게 베풀었다. 11살 어린 남지민을 데리고 전남 강진을 찾았다. 2주간의 먹고 자는 걸 해결해줬다. “별 건 없고, 사우나, 커피값 정도”라며 겸손하다.
이글스의 연봉 재계약이 일단락됐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다. 왜 아니겠나. 팀 성적에 대한 각자의 책임이다. 와중에 둘의 결과가 눈길을 끈다. 장민재와 하주석이다.
33세 투수는 51.3%가 인상됐다. 7600만원→1억 1500만원으로 올랐다. 입단 후 최고액이다. 반면 29세 유격수는 삭감됐다. 2억 90만원에서 1억원이 깎였다. 삭감율이 50.2%다. 시즌 중, 그리고 오프 시즌에 받은 두 차례 징계 탓으로 보인다.
물론 연봉은 종합적인 판단의 결과다. 누적된 성과의 합산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다. 한 명은 가장 헌신적인 시즌을 보냈다. 15년차 원클럽맨이다. 반면 다른 한 명은 참담했다. 프랜차이즈 스타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 둘이 아직도 비슷하다. 공감하기 어렵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