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의 입장에서 ‘깨어있는 시민’으로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런데 뜯어보면 선민의식에 근거한 말이라고 밖에 들리지 않는다. 추신수(41, SSG)의 작심발언은 아직 쿨하지 못한 국민정서를 나무란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추신수의 한 마디에 야구계가 떠들썩하다. 추신수는 지난 21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지역 한인 라디오 방송 ‘DKNET’에 출연해 오는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 선발과 관련해 작심해서 말을 쏟아냈다.
그는 “일본 같은 경우 국제대회를 하면 새로운 얼굴들이 많다”라면서 “우리는 보면 김현수(LG)를 비롯해서 김광현(SSG), 양현종(KIA) 등 베테랑 선수들이 많다. 물론 충분히 대회에 나갈 만한 실력이 있는 선수들이다”라면서 “하지만 나라면 당장의 성적보다는 미래를 봤을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경험해보니 좋은 어린 선수들이 많다. 어린 나이부터 WBC 같은 국제대회에 참가하면 느끼는 감정이나 마인드 자체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문동주(한화)가 제구력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던지는 투수가 없다. 안우진도 마찬가지다. 그런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갈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한국야구가 해야할 일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30경기(196이닝) 15승 8패 평균자책점 2.11으로 리그 최고의 투수였지만 과거 학교폭력 이슈로 WBC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한 안우진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안우진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서도 “제3자로서 들리고 보이는 것만 보면 안타깝다. 어떻게 보면 박찬호 선배님 다음으로 잘 될 수 있는 선수다. 한국에서 야구를 하고 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어릴 때 잘못을 저질렀지만 지금은 뉘우치고 있고 출장정지 징계도 받았다. 그런데도 국가대표로 나갈 수가 없다. 할 말은 정말 많다”라고 안우진을 국가대표로 뽑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우진을 감싸주기 보다는 (한국은)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라면서 “많은 선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이가 많다고 선배가 아니다. 이렇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는 후배가 있으면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후배들이 잘못된 곳에서 운동을 하고 있으면 바꾸려고 해야하는데 지켜만 본다. 그게 아쉽다”라며 안우진을 위해 야구계 선배들이 나섰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추신수는 2021년 시즌을 앞두고 KBO리그 무대로 돌아온 이후 한국 야구계와 관련해서 자신의 소신을 가감없이 밝혔다. 특히 구장 인프라와 관련된 비판은 원정 덕아웃 리모델링이라는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오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신과 작심발언이 때로는 선민의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국민들과 야구팬들의 정서는 추신수의 발언을 수긍하고 받아들일 정도로 ‘쿨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추신수의 발언과 생각들은 이미 WBC 대표팀 밑그림이 그려지기 전부터 KBO와 야구 관계자들이 1년 내내 수도 없이 했던 고민들이다. 이강철 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KBO 관계자들은 안우진의 발탁 여부, 세대교체 여부에 대한 의견을 이곳저곳에서 청취했고 그 결과로 나온 게 이번 WBC 대표팀이다.
“나라면 당장의 성적보다는 미래를 봤을 것 같다”라는 속 편한 소리는 추신수 같은 위치의 제3자나 할 수 있는 소리다. WBC와 같은 국제대회는 최고의 선수들이 나서서 성적을 거둬야 한다. 당장 지난해 도쿄올림픽 메달 획득 실패 이후 야구계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잊은 것일까.
안우진은 차치하고서라도 문동주는 지난해 데뷔했다. 150km 중반대 패스트볼을 손쉽게 뿌리지만 지난해 13경기(4선발) 1승3패 평균자책점 5.65의 성적을 기록했다. 아직 증명한 것이 없는 2년차 투수에게 대표팀 기회를 주는 게 합당한 것일까.
무엇보다 박세웅(28) 구창모(26) 고우석(25) 곽빈 정우영 정철원(이상 24) 김윤식 원태인(이상 23) 소형준(22) 이의리(21) 등 리그에서 활약한 젊은 투수들이 대거 발탁됐다. 병역 헤택이 걸린 대회가 아니지만 이번 WBC는 최정예 전력 구성은 물론 세대교체의 의미까지 동시에 담은 대회라고 볼 수 있다.
안우진의 경우 추신수의 말처럼 대표팀에 뽑을 수 있었다. 안우진의 학교폭력 징계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서 내린 징계로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KBSA 주관 대표팀에만 해당된다. KBO 주도의 이번 대표팀과 징게는 무관하다.
그러나 안우진을 모두가 용서하지 않았다. 학교폭력만큼 한국에서 민감한 사안은 없다. 추신수는 용서했을 지언정 모든 피해자가 안우진을 용서한 것은 아니다. “할 말이 많다”고 한 추신수지만 스스로 ‘제3자’라고 칭한 만큼 더 이상 제 3자는 말이 없어야 할 사안이다. 안우진과 피해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조심스러운 문제에 추신수는 선배라는 이름으로 어줍잖게 의견을 냈다.
한국은 법적인 판결만큼이나 ‘국민정서법’이 중요한 나라다. 그런데 ‘국민정서’에도 합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 추신수의 발언 하나하나 모두 ‘국민정서’를 고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추신수 본인의 음주운전 이력, 국가대표팀 발탁 논란 등을 안고도 ‘제3자’라는 신분으로 쿨하지 못한 국민정서와 야구계를 비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추신수 발언의 파장은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