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헤이(29)와 마이크 트라웃(32), 두 선수를 모두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는데 이견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MVP 수상 경력에 그라운드 지배력이 높은 오타니와 트라웃은 LA 에인절스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이러한 에인절스는 단골 우승후보인 팀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참혹하다. 우승은 커녕2014년 이후 포스트시즌 문턱도 밟지 못했다. 트라웃도 2014년이 마지막 포스트시즌 경험이고 오타니와 트라웃 듀오가 결합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포스트시즌은 커녕 승률 5할을 찍기도 버거운 팀이다.
그나마 오타니는 2016년 일본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지만 트라웃은 그마저도 없다. 메이저리그 역사에 족적을 남긴 선수들 가운데 ‘줄세우기’를 해도 상위 1%급에 속할 선수들이 ‘무관’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커리어 우승도 가치 평가의 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오타니와 트라웃 모두 ‘무관’은 후대 호사가들에게 딴지를 걸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당장 에인절스에서 우승은 언감생심이다. 오타니는 올해가 끝나면 FA 자격을 얻고 에인절스의 비전이 보이지 않으면 미련없이 떠날 가능성이 높다. MVP 듀오는 와해된다.
그래도 에인절스 유니폼이 아니라 각자의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 오타니는 일본, 트라웃은 미국 대표로 출장해 우승에 도전한다. 공교롭게도 오타니와 트라웃 모두 WBC 첫 출전이다.
오타니도 아직 일본 대표로서 우승 경험이 없다. 2015년 WBSC 프리미어12에서 한국전 2경기 완벽투를 펼쳤지만 끝내 한국에 발목 잡혔다.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에서는 일본이 금메달을 땄지만 오타니는 메이저리거로서 참가하지 못했다.
트라웃도 2017년 미국 대표팀 후보로 꼽혔지만 개인 사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고 이번에는 대표팀의 주장으로 미국을 이끈다. 트라웃은 21일(이하 한국시간) MLB.com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2017년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고 승리를 거둘 때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후회했다. 참가하기 원했지만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못했고 대표팀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라며 2017년 대회를 지켜봤던 당시의 감정을 설명했다. 당시 미국 대표팀은 최정예 멤버는 아니었지만 대회 주최국이자 야구 종구국으로서 첫 우승을 달성, 자존심을 회복했다.
이번 대회에는 트라웃이 참가하면서다른 슈퍼스타들도 합세한다. 트라웃이 구심점이 된 듯한 분위기다. 무키 베츠, 클레이튼 커쇼(이상 LA 다저스), 폴 골드슈미트, 놀란 아레나도(이상 세인트루이스), 피트 알론소(뉴욕 메츠), 카일 터커(휴스턴), 트레이 터너(필라델피아), 메릴 켈리(애리조나) 등 역대 최고의 명단으로 꾸려질 전망이다.
그는 “많은 선수들에게 연락이 왔다. ‘팀 USA’를 대표해서 조국을 등에 업고 뛴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라며 국가대표의 자부심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우승하기 위해서다. 서로를 위해 플레이하고 조금 더 알아가야 한다. 우리 가슴 속에서는 오직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 있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트라웃의 미국은 물론 오타니의 일본 역시 최정예 멤버로 나선다.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야마모토 요시노부(오릭스), 무라카미 무네타카(야쿠르트) 등이 출동한다. 오타니도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기 때문에 우승만 목표로 달라가고 있다.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첫 WBC라서 기대되고 열심히 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우승의 의지를 다졌다.
만약 미국과 일본 모두 8강을 돌파하면 미국 마이애미에서 치러지는 4강전부터 대적할 수 있다. 우승을 두고 외나무 다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트라웃은 일본을 경계하면서 “오타니가 ‘일본 대표팀에서 최고 선수는 내가 아니다’라고 말하더라. 오타니보다 나은 선수가 있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라면서 “하지만 오타니는 그의 동료들을 잘 안다. 우리가 일본과 맞서야 한다면 오타니와 상대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라면서 맞대결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트라웃과 오타니 모두 무관의 오명을 잠시나마 해소시켜 줄 WBC 우승 타이틀을 원하고 있다. 과연 이번 WBC에서 맞대결을 극복하고 무관을 극복할 선수가 나올 수 있을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