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진짜 안쓰러웠죠.”
최원호(50) 한화 퓨처스 감독은 11년 전 LG 육성선수 시절의 채은성(33)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 2012년 당시 최원호 감독은 LG 퓨처스 투수코치로 2군에서 채은성과 함께한 인연이 있다.
최 감독은 “내가 코치일 때 은성이가 3루수에서 포수로 전향했다. 그때 LG 포수들이 다치고, 군대를 가면서 남은 선수가 1명뿐이었다. 대체 포수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은성이가 했는데 입스에 걸렸다”고 돌아봤다.
‘입스(Yips)’란 심리적 불안으로 근육이 경직돼 평소 잘하던 동작이 안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야구 선수가 입스에 걸리면 투구나 송구를 제대로 못하게 된다. 보통 마음이 여리거나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선수가 외부 쇼크를 받을 때 발생하는 증상이다. 일시적 현상으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포지션을 바꾸거나 유니폼을 벗는 선수들도 많다.
가뜩이나 육성선수 신분으로 언제 방출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채은성에게 입스는 청천벽력과 같았다. 그때부터 투수 출신 최 감독과 매일 아침마다 1대1로 몇 백개씩 공 던지는 훈련을 시작했다. 최 감독은 “은성이가 매일 아침부터 열심히 훈련을 준비하면서 입스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 모습을 코치들도 다 봤다”고 말했다.
시즌 중반부터 구단들은 선수단 정리 작업을 준비한다. 입스에 걸린 육성선수는 어느 팀에서든 방출 대상이다. 채은성도 그랬다. 최 감독은 “당시 코치들이 은성이를 좋게 봤다. 구단에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조금만 더 기회를 주자’며 방출을 만류했었다. 워낙 성실하고 열심히 하니 주변에서 도와준 것이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방출 위기를 넘긴 채은성은 2013년부터 1루수,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꿔 타격 장점을 살렸다. 퓨처스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내더니 2014년 1군 데뷔 꿈을 이뤘다. 2016년부터 풀타임 주전으로 자리를 잡아 2022년까지 LG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지난해 시즌 후에는 FA 자격을 얻어 한화와 6년 최대 90억원 FA 계약으로 대박을 쳤다.
최 감독은 “예전 은성이를 생각하면 진짜 인간 승리다. 그래서 퓨처스 선수들에게도 은성이 얘기를 많이 한다. 퓨처스 선수들에겐 이런 마인드가 필요하다. 1군에서 떨어진 선수들이 있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난 안 돼’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할수록 자꾸 핑계거리를 찾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최 감독은 “확률이 낮아도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면 자기개발에 도움이 되고, 기회가 올 수 있다. 기회를 살리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며 “부정과 긍정의 차이는 핑계를 찾느냐, 방법을 찾느냐는 것이다. 그 점만 명심해도 바늘구멍을 뚫을 수 있다. 은성이가 좋은 예다. 퓨처스 선수들에게도 그런 마인드를 심어주려 한다”고 말했다. /waw@osen.co.kr